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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사람판’의 국회를 기대하며

왜 ‘짐승처럼’ 싸우는가?
국민의 뜻 제대로 펼쳐달라

 

우리나라의 국회가 개판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개판’이란 말을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정의하고 있다. 나는 ‘개판’이란 말이 어떤 새로운 판이 시작되기 직전의 혼란상을 가리키는 ‘개판 5분전’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인지, 사람의 행위와 구별되는 개들의 난잡한 행위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 국회의 모습을 떠올릴 때만은 개판이란 말의 의미를 ‘사람판’과 구별되는 ‘개판’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룩한 이후 국회가 품위있게 회의를 진행한 적이 과연 몇 번이었던가! 최근 몇 년간의 경우만 돌이켜보아도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들은 사학법 제개정 문제를 두고, 한미 FTA 비준문제를 두고, 미디어법 표결 문제를 두고 참으로 줄기차게 ‘짐승처럼’ 싸웠다. 사람이면서도 본회의장 단상에 뛰어오르고 발길질을 하면서, 물어뜯고 주먹질을 하면서 ‘짐승처럼’ 싸웠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쫓겨난 사람도 처벌받은 사람도 없었다.

일상인들은 취중에 소변을 한번 잘못 봐도 사람답지 못하다고 처벌받는데 국회의원들은 짐승처럼 싸우며 비싼 본회의장 문을 박살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 그럼 대한민국 국회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국회를 개판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그처럼 결사적으로 서로 싸우는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까닭이다. 말로는 국민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라 하고, 국민들이 절대 반대하는 법안이니까 통과시킬 수 없다고 하는데, 나는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가 없는 까닭이다.

국민을 충심으로 위하는 자세가 진정한 이유였다면 국민의 뜻을 반영하여 간단히 결정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국회의원들이 그처럼 무섭게 서로 싸우는 이유가 붕당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헌신과 희생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안믿기 때문에 제발 그렇게 행동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제발 대한민국의 품위를 위해서도 그런 식으로 ‘짐승처럼’ 싸우지 말고 질서있는 진행과 논리적인 토론으로 가부를 결정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도대체 국회의원들은 왜 그렇게 국민을 팔거나 국민을 기만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고유한 존엄성을 지닌 실존적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한무리의 짐승처럼 행동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짐작컨대 국회의원의 공천이 중앙당의 실세들 손에 있기 때문일 것이며, 우리의 선거가 공천이 당서이라는 공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스스로를 붕당의 하수인이 아니라 존엄한 입법기관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유정회 국회의원처럼 낙점받은 사람이 아니라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뽑힌 사람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 그렇게 ‘짐승스럽게’ 행동할 수가 없다.

국회의원들을 여당과 야당 의원으로 구분한 것은, 다수당과 소수당으로 구분한 것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국민들이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그렇게 결정해 준 것이다. 그럼에도 여당은 여당이란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으며, 야당은 한사코 야당이란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만약 여당이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이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 심판은 야당이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내리는 것이다. 지금 당장 야당이 심판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해야 할 일도 분수에 맞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국민이 부여한 권한과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넘어서는 행위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확인하면서 국회가 ‘사람판’으로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프로필
▶1953년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서울대 문리대학원 박사 졸업
▶1992년~현재 인하대학교 교수
▶2008년~현재 문학과 지성사 대표이사
▶2009년~현재 인하대학교 문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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