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명사칼럼] 국격(國格)시대의 인권

탐욕의 시대 ‘열린사고’ 필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기대

 

홍세화씨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을 보면 똘레랑스 정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을)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남으로 하여금 당신을) 존중하게 하시오!’ 이게 바로 똘레랑스 정신의 출발점입니다.”

책에서는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요구하고, 자신과 다른 것들도 인정하라는 정신이 바로 똘레랑스의 첫 번째 의미이며, 소수에 대한 다수의, 약한 자에 대한 강자의, 가난한 자에 대한 가진 자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려는 것이 똘레랑스의 두 번째 의미이며,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가 똘레랑스 정신의 세 번째 의미임을 밝히고, 서로 다른 인격체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묵시한다.

열린 세상, 세계화 시대에 그 위상을 더욱 높여가는 대한민국은 국격(國格)이란 단어가 대변하듯 경제, 문화, 스포츠 분야에서 눈부신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아주 단순한 통계 논리로 따지면 국권에 기반한 국격이 높은 국가는 인권에 바탕한 인격으로 충만된 구성원들의 집합이다. 그러니 이제 수준 높은 교양문화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와 다른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의견에 대해서도 ‘존중’할 줄 아는 똘레랑스(tolerantia) 정신을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이다. 이미 ‘국격’을 논하는 시대에 열려 있는 사고와 마음으로 글로벌 시대를 더불어 살아갈 넓은 ‘인격’이 우리 학생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독단, 독선과 아집이 횡행하는 때도 드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만 있고 남은 없는, 오직 이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탐욕의 시대다. 탐욕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합리성과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열린 사고가 설 자리가 없다.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숱한 일들, 반강제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 두발과 복장에 대한 엄격한 규제 등을 포함한 이런저런 일들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거기 어디에서 합리성을 찾을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 학생들은 어쩌면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열린 사고를 경험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옳으면 저것은 틀리거나 정답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흑백논리에 익숙해 있을 지 모른다.

학생들에게 자유와 자율을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그 자율과 자유가 가져오는 다양성과 혼란스러움이 부담스러워, “선생님, 제발 반 분위기 좀 꽉 잡아 주세요! 좀 엄하게 다스려 주세요!” 하고 불평하는 학생들이 있다. 정해진 길만 걷도록 이끈 결과가 빚은 슬픈 현상이다. 그러니 기성세대에게, 그리고 사회나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접한 것들이 어떠했는지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그저 똑같이 되기, 그리하여 그 요구에 순응하면 한편, 따르지 않으면 적대관계가 되는 경직된 구조 속에서 다른 쪽은 살피지 못하는 반쪽 사고에 병들어 왔는지 모른다.

단 1명의 학생이라도 상처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 교육의 사명이기에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삶에 더욱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것은 교사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그러자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인권에 대한 고민, 인권에 대한 논쟁, 인권에 대한 실천을 요구한다.

이제 학교는 인권에 대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학생들이 그들의 생활 속에서 찾고 실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생들이 독선의 논리와 편견의 횡포에 대해 인식하고 특별한 상황에서 자유가 무엇인가를 알도록 무한 경쟁 속에 합리라는 허울을 쓰고 행해졌던 그간의 교육 활동을 반성하는 계기를 조성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논의를 환영하고 반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도에는 많은 책임이 따르리라 본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대한 시도 또한 분명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를 것이다. 학생인권에 대한 논의와 이 논의를 통해 얻어지는 풍성한 사고의 확장이 반겨지면서도 걱정을 숨길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에 진정한 합리성과 인간애에 바탕을 둔, 열린 사고로 충만한 인격자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세간의 기대와 우려를 충분히 용해할 것이란 믿음을 갖게 한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경기도교육청의 노력이 우리사회의 ‘격(格)’을 높이는 또 하나의 씨앗이 되길 바란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