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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낙태, 루비콘 강을 건넜다

사회적 부작용 우려
현실적 방안 모색할 때

 

“저는 40대고 남편은 내일 모레 50입니다. 그런데 실수로 생긴 지금 이 상황이 정말로 지옥 같아요. 정말 중국으로 가야하나요? 지금은 아직 배아상태라고해서 정부에서 빨리 결정이 나던지 아니면 중국 쪽이라도 알아 봐야겠어요. 아마도 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하루하루 지체하고 있는 동안 피가 마를 것 같은데 언제쯤 결정이 날까요? 주수가 되기 전에 빠른 결정이 나와서 한국에서 할 수 있길 빌고 또 빕니다”

이 사연은 한국여성의전화가 최근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낙태에 관한 목소리를 듣기위해 마련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피임에 실패한 40대 여성이 최근 불법낙태근절 분위기에 좌절을 하면서 중국 원정낙태를 생각하고 있다. 같은 게시판에는 미혼여성의 사연도 있다.

“저는 선을 보고 결혼 결정을 하고, 집안의 사정으로 파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와 임신이라네요. 수술도 안 된다 하네요. 저 같은 경우 어찌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 집안에서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아서 혼자 미혼모로 키워야 한다는 말입니까? 정부는 대책 없이 미혼모 만들고, 아빠 없는 자식 만들어 비참한 인생 또 하나 만드는 겁니다. 그렇지 않게, 사회적 제도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구요. 정말 비참하게 만드는 법이네요.”

이 여성은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수용, 경제적 지원 등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혼모가 되어야한다는 중압감에 비관하고 있다.

현행법은 강간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 특별한 5가지 경우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이웃들에게서 그동안 흔히 보았던 생계곤란, 늦둥이, 미혼모등의 낙태는 불법이었다. 그런데도 과거 우리사회에서는 낙태가 만연했었다. 이유는 가임기 남녀의 성교육과 피임 인식이 부족한 데다 미혼모를 죄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자녀 양육이 힘든 경제적 여건, 과거 산아제한 정책의 일환 등 다양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한 해에만 하루 평균 약 1000건, 연간 약 35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졌고, 그중 약 95%가 불법낙태였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과거의 사실이다. 지난 2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불법 낙태한 병원들을 고발한 이후 그동안 불법낙태를 해오던 산부인과 병원들 상당수가 당국에 적발될까봐 임신중절 수술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그래서 임신한 여성들이 지금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고 있다. 도움을 요청하는 호소도 잇따르고 있다.

“저 어떡하죠. 남자친구랑 깨진 상태에서 임신이라니. 중절 수술 해주는 병원이 없네요. 혼자 낳아야하나요? 집에서 알리면 사람 취급도 안 할텐데 도와주세요“

여성의 전화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은 지난해부터 우리사회 일각에서 제기됐던, 태아의 생명권 존중에 입각한 불법 낙태 근절 운동이 사회적 부작용을 낳기 일보직전까지 와있다는 현실을 알려주고 있다. 앞으로 원하지 않는 임신일 경우 비 의료인 시술이나 중국 등 원정 수술이 성행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아이를 시설 등에 버리고 도망가거나 살해할 수도 있다.

필자는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12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낙태 허용사유에 미혼임신 및 경제적 어려움 등의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 현실에 부합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낙태 허용기간을 법률에 명시(사회·경제적 사유의 경우 12주, 기타 사유의 경우 24주)하고 낙태 시 2회에 걸친 상담절차를 거치게 해서 무분별한 낙태에 대해서도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지난해 불법 낙태근절운동이 시작된 이후 우리사회는 낙태를 반대하는 진영(pro-life)과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진영(pro-choice)으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논쟁만 벌일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낙태현실은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다. 지금은 불법낙태를 감소시키면서 그 부작용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모색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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