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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캠퍼스의 노예, 그들은 누구인가?

사회 수준 가늠한 척도
시간강사 법적처우 개선을

 

교수 채용 비리 등을 폭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 시간강사의 유서가 충격을 주고 있다.

모 사립대 시간강사인 S 씨는 교수 채용 비리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는 유서 5장을 이명박 대통령 앞으로 남겼다. 그는 유서에서 사립대는 메뉴별로 6천만원, 1억원, 3억원 대의 교수직을 팔고 있으며, 수백만 원의 논문 대필과 끼워주기로 보너스 역할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컸으나 우리 사회는 냄비뚜껑식으로 간과하고 무관심했다. 시간강사의 직업을 흔히 보따리 장사라고 한다. 구매자에게 선택돼야 시간이 확보되고 그것도 대개 1주일 1과목 3시간이다. 1시간당 3∼4만원으로 40만 원 정도이다. 지방일 경우는 교통비와 숙식비로 더욱 고달프다. 대학캠퍼스에 강의를 나가도 어디 들러서 쉴 곳이 없다. 강사라는 핸디캡을 보완하기 위해 시수의 2배, 3배 시간을 할애해 강의 준비를 한다. 강사도 강의 평가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가방에는 전공서가 5권이다. 학교에 책을 둘 데가 없어 낡은 가방에 너덜한 책을 한 보따리씩 넣고 다닌다.

대학과 학과교수에 찍히지 않으려고 마음 졸이며 때가 되면 식사대접을 하고 채용시기를 기다리다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그러다가 어느 덧 40대 전후반이 된다. 4년제에서는 대부분 박사학위 소지자라야 시간강사로 자격이 주어진다. 박사학위에 전념하다 보면 아이가 태어나고, 방학 중엔 그나마 한 푼도 들어오지 않으니 가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이다. 강사의 드라마는 그렇게 변한 것 없이 20년이 흘렀다. 대학 시간강사에 교원 지위를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일 년 넘게 농성도 했다. 그리고 많은 인재들이 박사학위만 소지한 채 극단적인 삶을 택한 이도 이젠 기억할 수 없다. 간간이 시간강사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곤 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이름만 교수이면서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래도 학교엔 교수보다 강사가 더 많다. 교육개발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현재 전국 4년제 대학의 시간강사는 8만4천797명으로, 전임교원 수 5만7천246명보다 많다.

그런데도 시간강사 제도가 바뀌지 않는 것은 인건비를 줄이고 비정규직 고용의 편리함을 놓지 않으려는 대학 측의 책임이 크다. 대학은 비정규직이라는 점을 악용해 계약서를 유리하게 변경하고 적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사학재단들의 눈치를 보면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교육당국에 있다. 열악한 교원의 처우와 학교 환경 등은 빠지지 않는 공교육 부실이 원인이다. 무엇보다 공교육을 책임져야 할 교육당국이 전시적, 형식주의적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교육 당국의 소신 있는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한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과 과감한 교육예산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교육당국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 공교육이고 이 공교육은 교수의 질에 달려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캠퍼스의 노예,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의 삶과 등불을 밝혀주고 이끌어주고 당겨주는 등대이자 나침반이다. 대학들은 시간강사들이 기본적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근무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학위를 돈으로 사고 팔고 수백만원짜리 논문을 보너스로 대필해주어야 하며 3억짜리 교수자리를 담보로 채용하는 대학이라면 하루 빨리 문을 닫아야 한다. 시간강사의 법적 보호 강화와 강사의 질적 업그레이드 없이는 대학교육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런 부분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사교육 시장이 비대해지면서 우리 교육은 사회의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개혁은 바로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비롯해 부당한 규제와 간섭의 배제, 강사의 전문성 제고 등 강사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시간강사가 바로 서야 교육도 바로 설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시간강사들의 문제가 바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미래 청소년들의 교육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인재양성과 공교육을 살리는 길은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법적·제도적 개선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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