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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선비, 왕을 꾸짖다

왕 잘못 지적, 불이익도 감수
우탁선생, 역사 용기있는 자

 

흔히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 사람을 유혹하고, 행락객(行樂客)을 실은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거북이걸음을 한다. 그런데 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할까?

일 년 가운데 도서 매출이 가장 저조(低調)한 계절이 가을이란다.

가을은 말이 살찐다. 그래서 우리들의 양식(良識)도 살찌우자(?) 이런 계도적 권유가 어느덧 자리 잡아, 가을하면 으례 독서의 계절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 말이 떠오른다. 옛날에 먹는 것이 빈약했을 때 이야기, 어른 아이 두루 밥상에 앉았을 때, 고기 한토막이 놓여있을 때 눈치 없는 아이들이 머리는 피하고 살코기에 젓가락이 갈 때 유식하게 한 말씀 “애들아, 고기는 어두일미, 머리가 제일 맛있단다!”

하여간 만사에 원칙 데로 굴러가지 않을 때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 어두일미! 꼬셔가면서 세상사 조정(調整)하는 것도 미운일은 아니다. 어쨌든 책 제목이 하도 근사해서 사두었던 책을 폈다.

‘선비, 왕을 꾸짖다’

책을 샀던 날짜를 표지안쪽에 기록하는 버릇이 있는데 ‘2009. 9. 11’ 이라고 기록돼있으니, 참으로 게을렀다.

투자한지 일 년 만에 본전을 뽑으려 책상에 꽂꽂이 앉았다.

선비들이 왕에게 상소(上疏) 한 것을 묶은 것 인데 상소문은 정의(正義)의 문학이자 정치문학의 꽃이다. 왕에게 잘 못 보이면 곧 죽음이다.국사(國事)에 전념하신 가운데 존체(尊體) 더욱 건승(健勝)하심을 앙축(仰祝) 하나 이다. 책은 이런식의 낮은 포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끝부분에는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비옵니다”, “이제 또 다시 간청하오니 특별히 처분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죽음을 앞 둔 신하는 “병이 위독해 죽음이 임박해 정신이 어두워 말의 조리가 없으니 황공 하올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글이 후사(後事)에 돌아올 어떤 불이익도 감수를 한다는 각오 와 강직함 없이는 힘든 법이다.

또 왕의 자질(資質)에 따라 넓은 도량(度量)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옹졸해서 너까짓게 뭔데 건방지게, 이런다면 뜻도 이루지 못하고 꼴이 가관(可觀)이 될 수 있다.

모름지기 직간(直諫)이란 벼슬을 버리며, 죽음을 무릎 쓰고 간했으며,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 요즘 기준으로 보면 만용(蠻勇)(?)이라고 해야 하나.

지부상소(持斧上疏)란 말이 있다.-도끼를 들고 왕에게 상소하는 것을 문자를 쓴 것 인데 내말이 틀리면 도끼로 머리를 쳐달라는 뜻이니, 참으로 처절한 직언(直言)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총선왕은 아버지의 후궁과 눈이 맞아 여론이 썩나뻤다. 당시 유교의 윤리로는 도저히 용서하고 그냥 넘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주위 신하들은 겁만 내고, 뒤로만 빠져 쑥덕 데고만 있을 뿐 누구 한 사람도 나서질 않았다.

감찰규정이란 벼슬에 있던 우탁은 상복(上服)을 입고 거적을 메고 도끼를 든채 대궐에 들어가 상소문을 올렸다.

군왕은 마땅히 경술(經術)을 좋아하며 날마다 유신과 더불어 경사를 토론하고, 백성을 교화하고, 만고에 결처 변할 수 없는 윤상(倫常)을 무너뜨림이…, 하루 빨리 마음을 돌이키소서!

서늘하다 못해 어깨가 뻣뻣이 굳어지는 내용이다.

“내가 왕 이였다면 받아 들였을까? 아니면 이놈을 능지처참해라,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

우탁선생처럼 무릇 용기 있는 사람이 역사에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 주자학(朱子學)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받는 정몽주는 우탁선생의 사후 25년 만에 선생말 동방사림(東方士林)의 으뜸으로 삼아야한다고 상소를 올렸다.

의인(義人)은 의인을 알아보는 법! 역사의 향기에 흠뻑 취한 보람이 있는 가을밤 이었다. 어찌됐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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