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

 

지난 일요일, 봄비가 제법 굵게 떨어지는 이른 아침. 서울 홍익대학교 홍문관 앞에서 한참을 바라봤다. 이날은 공인 회계사 시험을 치는 날이었는데 이곳 홍대도 몇몇 시험 장소 중 한 곳.

두툼한 책을 끼고, 혹은 책가방을 둘러멘 젊은이들이 연이어 들어서고 있었다. 퀭한 눈에 샌드위치를 손에 들기도 하고 도시락 가방을 든, 트레이닝복 차림의 수험생들. 그들은 마치 완전군장을 하고 50Km 행군을 막 끝내려는 지친 군인들처럼 고지를 눈앞에 두고 필사적으로 돌진해 들어오듯 그야말로 전투적인 자세다.

“이 시험만 붙으면 만사가 오케이라 카는데....,‘

컴퓨터 사인펜을 팔고 있는 노인의 억센 사투리가 빗속에서 웅웅거리고…. 딸아이의 두꺼운 상법신강(商法新講)책을 옆구리에 끼고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 딸을 향한 애절한 눈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늘 우리 젊은이들의 현실이요 부모님들의 초상같았다.

연속되는 시험. 시험. 시험…, 편리한 줄 세우기에서 시작되는 고입, 대입, 입사의 과정 중에 보게 되는 스펙쌓기의 연속인 시험. 그만하면 굳은살이 박힐만도 할 텐데 늘 바라보기만 해도 위축이 되고 긴장이 된다는 건 결코 시험은 놀이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닐까. 시험에서 얻어낸 결과물을 제시하고 나의 값어치를 평가해주기를 기다려야하는, 내 가치를 그 시험으로 잣대질해야 하는 현실. 여러 가지의 평가방법을 거쳐 오면서 매 순간 어떤 방법으로든 시험이라는 관문이 우리 앞에 놓여있었던 것 같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결코 시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 전 TV에 방영된 ‘한국인의 행복’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서 벽돌공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자신의 일에 만족감을 느끼며 자신의 일도 은행장이 하는 일 만큼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삶. 진정 내 마음이 평온할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일 때도 오늘처럼 저토록 간절한 경쟁의 전쟁터에서 치열한 싸움을 할까,

물론 자신의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달리는 젊은이들의 열정은 더없이 아름답다. 오늘 저 홍대 정문을 마치 개선문을 들어서듯 그동안 준비한 내 모든 걸 보여주기 위해 들어서는 그들이라면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그런 젊음을 또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들도 그곳엔 공존하고 있었다.

커피숍에서 잠시 차를 마시다 만난 두 쌍의 젊은이. 밤새 술을 마시며 클럽에서 놀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지쳐 서로 지난밤을 평하며 퀭한 눈길을 주고받던 그들. 그들이 자리를 떠나며 남긴 말

“오늘 너무 달렸어 좀 쉬자”라는 말이 한참을 오버랩 되어 거리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의 스펙을 위해, 남들보다 돋보이는 내 성공을 위해, 죽도록 싫어도 달려야 하는 그들. 진심으로 나의 진정한 모습, 자아를 찾고자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실행에 옮겨가고 있는 그들. 젊음의 한 때를 기발하게, 더욱 쾌락적으로 철저하게 즐기고 있는 그들 모두에겐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잠시 쉬어가는 휴식, 나를 돌아보는 휴식, 걷고 있는 내 길에 진정 ‘나’라는 자가 존재하는지, 조금 더 멀리 떨어져 나를 찾아보는 그런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란 새로운 시작을, 보다 나은 미래를 잉태하는 힘의 원천이 아닐까. /이상남 시인

▲ 독서 논술 지도사 ▲ 평택 문협 회원 ▲ 독서 논술 교육원 원장(현)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