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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변산 바람꽃처럼 피어 있으라

 

며칠 전 딸아이가 시집을 갔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하얀 드레스에 아빠 손을 잡고 평생 동행할 사람에게 간 딸인데 자꾸 찾아드는 이별이란, 헤어짐이란, 단어가 나를 괴롭히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자식이건, 가까운 친지이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살면서 겪어야 하는 일이거늘, 하루 이틀 지나도록 일상을 지키는 일이 힘들어 진다는 것은 내면의 나약함에서 오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안 동료가 변산바람꽃을 만나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 다섯 시간이나 달려야하는 변산이지만 그리 하지 않고는 그 어두운 늪을 헤어 나올 길이 없을 것만 같다.

인터넷에 의하면 변산 골짜기에서 을씨년스런 긴 겨울을 이기고 가랑잎 아래 삐죽이 얼굴 내밀고 누군가 기다린다고 한다. 이제 그 녀석들을 만나면 내 안의 작고 여린 마음을 다 불러내 무언의 애정을 퍼부으리라. 그러고 내마음의 휘장을 활짝 열고 뛰어 나오리라.

무작정이듯 달린다. 멀리 차창 밖으로 굽이굽이 능선들이 그림처럼 휙휙 지나간다. 멀리 보리밭이며 나뭇가지에 푸른빛이 어리기 시작하고 있음은 분명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음이다.

변산 어딘가 찻길이 끝나는 곳에 차를 세워놓고 외딴집을 향해서 걸었다. 길 옆의 보리밭에선 보리싹이 겨울을 이기고 파랗게 제 색깔을 띄우기 시작하고 있다. 보리밭을 돌아 외딴집을 향해 걸었다.

“저 외딴집에 변산바람꽃 사진이 벽에 걸려있으면 우리는 제대로 찾아 온거야.” 외딴집엔 팔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반갑게 우릴 맞아 주신다.

“할머니, 안녕하셔요.” “어디서들 왔수.?” “네. 서울 근처에서 왔어요.” “에이, 여기 오는 사람들은 모두들 서울에서 왔다고 하지.” 할머니는 집 앞에 심어놓은 오가피나무를 조그맣게 잘라서 봉투에 담고 계셨다. “할머니 이거 뭐 하시는 거예요?” “응. 이따가 갈 때 하나씩들 사가지고 가우.”

 

우린 할머니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데 할머니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그만 찍으라고 하신다.

“어제도 열다섯 번은 찍었을 거유. 꽃은 저 밭을 따라 끝으로 가면 있어.” 산비탈 가장자리를 걸어 올랐다. 산비탈이 거의 다 끝날 무렵 가랑잎에 덮인 하얗고 작은 변산바람꽃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엔 꽃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어서 함부로 발 디딜 수 없어 조심에 조심을 하였다.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추위의 역경을 이기고 오롯이 피워낸 꽃송이, 이 추운 산에 여린 꽃술을 다 내밀고 이 변산의 첫 봄을 여는 것이다. 작아도 큰 여인처럼 변산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몸을 낮추어 카메라를 들이대다 문득 작은 일에도 지치거나 나약해지는 내 자신을 돌아본다. 언제나 조급하고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던 순간들이 물거품 같다. 하얀 드레스를 밟고 떠난 딸아이가 그 순결한 마음의 꽃으로 늘 행복하기를 바라면 되는 것을, 이곳 작고 여린 바람꽃처럼 그 아이가 강해지기를 빌며 굿굿하게 기다리면 되는 것인데….

이연옥 시인

▲ 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 시집 <산풀향 내리면 이슬이 되고>

<연밭에 이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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