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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단상] 카이스트,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최근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자살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개혁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징벌적 수업료 납부와 강제적 영어수업이 문제가 되면서 이를 주도했던 총장 사퇴는 불가피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살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나약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더 타임스’지에서 시행하는 세계대학평가에서 2006년에는 198위였다가 2009년에는 69위가 됐으며, 공학·IT분야로 한정하면 21위로 평가됐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개혁은 지속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영국의 일간지는 동료평가(40%), 교수 1인당 논문 인용지수(20%), 교수 대 학생 비율(20%), 국제기업의 대학평가(10%), 외국인 교수 비율(5%), 외국인 학생 비율(5%) 등을 기준으로 삼았다. 동료평가를 어떻게 객관화하는 지도 의문이고, 기업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기초 학문이 발달한 대학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점도 있지만, 이 기준만 충족되면 과연 최고의 대학이 되는 신성불가침의 절대적인 기준인가 하는 의문부터 든다.

물론 미국 스탠포드 대학도 실리콘 밸리와의 산학협동을 통해 성장했듯이 실용적인 학문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공부를 시켜 좋은 학점을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무엇이 실용적이고, 또 좋은 학점이 모든 것의 으뜸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동경대학 졸업장은 빵 한쪽의 가치도 없다고 선언하고 자퇴한 후 혼다 그룹을 일군 혼다나, 하버드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츠, 리드 대학교를 중퇴한 스티브 잡스, 문학에서는 대학 근처에도 못 가본 헤르만 헤세, 이들은 과연 산업 발달 또는 지성의 발달에 기여하지 못한 낙오자들인가. 아마도 이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인내하며 좋은 성적을 받고 졸업했다면 그저 뛰어난 직장인 이상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은 현재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사회의 미래를 위한 인재 양성이 근본적인 목표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엘리트를 뽑아 놓고 끊임없이 무한 경쟁과 패배의식을 심어주는 것을 개혁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개성과 잠재력을 끌어내어 극대화 시키는 것이 대학의 목표가 돼야 한다. 다양한 인재를 뽑는다는 명목으로 전문고에서 로봇영재를 뽑아놓고 획일화된 교육으로 인해 자살까지 몰고 갔다면 이는 그 대학의 존재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볼 문제다.

최고의 대학이라고 자부하면서 학생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지 않으면 그들이 노는 것에만 열중할 것이라고 믿을 정도로 자기 제자에 대한 믿음도 자신감도 없단 말인가. 이런 교육제도에서 인생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의 학생들에게 인생을 논하고 철학을 사색하고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 건물이라면 성냥갑 같은 모양만이 생각되던 시절에 공간 사옥, 오감도, 잠실 주경기장과 같은 예술성 높은 건물을 설계했던 김수근 씨가 생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때 건축과 학생이었던 미군 병사가 자기 집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는데, 그 병사에게 가장 좋은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보니까 건축가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물어 보았더니 음악, 미술을 즐기고 소설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었다. 너무 놀란 김수근씨가 그 이유를 묻자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절대로 좋은 건물이 나올 수 없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지금 카이스트의 개혁논의를 보면 방법론에 대한 논의만 보이지 근본적인 방향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개혁의 중심에는 총장의 업적이 되는 당장의 대학 순위가 아니라 학생들의 꿈과 인생관, 철학 그리고 그들이 처한 입장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미래를 같이 설계하는 고민이 놓여야 하는 것이다. 건강은 완전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의 상태를 말하지 단지 질병이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미래의 주역을 만들어 내는 개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현석 객원논설위원,현대중앙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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