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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단상] 의사가 고치는 것

 

‘병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는 말이 있다. 병을 고치기 위해 시술을 할 때 환자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적절한 의술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은 나았는데 사람은 몸이 망가져서 삶이 전보다 못하든지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친구의 어머님이 병원에서 무슨 수술을 하시고 얼마 안 되어 돌아 가셨다. 그 당시 그 어머님은 연세가 80여세 였는데 친구에게 물으니 수술은 잘 됐는데 워낙 기력이 약해지셔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 환자의 기력 상태와 연세, 수술 후 환자 호전도 등을 감안해야 하는데 이 경우엔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자를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환자의 상태이다. 기력이 얼마나 좋은지 얼굴을 살펴보고(망진), 맥도 짚어보고(맥진), 소리도 들어보고(문진:聞診) 혀도 살펴봅니다(설진). 물론 환자의 현 상태를 알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도 한다(문진:問診).

이렇게 살핀 다음 어떤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침과 뜸, 부항 등을 고려하고, 약을 권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고, 본인도 만족해 하면 치료를 한 의사도 맘에 흡족해 한다.

얼마 전 어르신 한 분이 안사람 되시는 분과 같이 내원했다. 병원에서 한 달 정도 이런 저런 검사를 하시면서 밥을 굶으시고 대신 수액을 맞으셨다고 말했다.

처음 들어오시는데 기력이 정말로 없어 보이셨고, 무릎이 안 좋으시고, 배도 뻣뻣해서 매일 아침 30분 정도 주물러야 하고, 잠도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드셔야 주무시고 등….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을 말씀하셨는데, 당분간 기력이 돌아 올 때까지 왕뜸을 떠서 기운을 돌아오시게 한 다음 다른 치료를 해드렸다.

두 달 가까이 치료를 하면서 약도 드셨는데 안사람 되시는 분이 상담 중에 “원장님 고맙습니다.”고 인사를 하길래 처음에는 ‘남편 분의 건강이 좋아져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분의 말씀은 “남편의 상태가 좋아지니 저를 덜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말씀을 들어보니 평소에 남편 분이 바깥 활동을 많이 하시고, 성격도 꽤 있으시면서 꼬장꼬장하시던 분인데 작년에 몸이 아주 안 좋아서 입원한 후에 기력도 떨어지시고, 몸도 뜻대로 움직이지도 못하시고, 또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 조급한 마음도 있으셔서 병이 안 낫는다고 짜증과 신경질을 부리는 날이 많으셨는데 우리 한의원에 와서 치료를 받고, 약도 드시면서 짜증도 덜 내시고 마음도 많이 너그러워 지셔서 요즘은 화를 덜 내시니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환자가 보호자와 같이 한의원에 오는 경우는 많지 않고, 또 늘 같이 다니시는 경우는 더욱 드물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이런 말씀을 듣고 보니 의사가 고치는 것은 환자의 병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중에 누구 한사람이 병이 나면 나머지 가족들도 다 마음이 편치 않다. 또 “삼년 병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도 있듯 병이 깊고 오래되면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고 가족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사람의 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늘 마음에 두고자 하는 말이 ‘단작구고지심(但作救苦之心) 어명운도중( 於冥運道中) 자감다복자이(自感多福者耳)’라는 구절이다. 해석하면 ‘오직 고통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갖고, 저승으로 가는 길에서 복을 많이 받은 사람임을 스스로 느낄 뿐이다.’ 당나라 초기의 명의 손사막이란 분 글 중에 있는 말이다.

의자(醫者)로서 병을 고쳐 그 사람의 고통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평안하게 하니, 환자의 병을 제대로 치료하면 알게 모르게 쌓는 음덕이 상당할 것이다. 어찌 복 많은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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