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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유월을 맞으며 생각한다

 

얼마 전 나는 시골 시댁을 다녀오는 기회가 생겨 아들과 함께 나들이 아닌 나들이를 해야 했다. 친정과 달리 시댁은 왠지 어색하고 몸이 긴장되는 곳이라고 말하면 남들이 웃고 흉보겠지? 그러나 나는 시댁이 불편하여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체 이렇게 다녀오곤 한다. 간간이 들판 농부의 모습도 보고 녹음이 초록 융단으로 깔리는 산도 바라보면서 파란 하늘에 소리 없이 날아가는 새들의 무리가 초여름 문턱을 열어놓고 떠나는 오월 끝자락을 더욱 높여주고 있었다. 계절의 향기는 풋풋하게 내 코끝을 건드리고 차의 음향은 그런대로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꽃들은 서로 다투어 뽐내고 싱싱하게 뻗어나는 나뭇잎의 몸매는 쑥쑥 크는 청소년의 매력과도 같이 나를 흥분시킨다.

이제, 찾아온 유월은 보훈의 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월을 기억 하는 것 중에 6.25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겪은 그 참혹했던 전쟁을 역역히 새기고 있어서인지 6.25가 잔인 하고도 슬프고 또 억울한 몸부림으로 한낱 여름 이야기가 돼서는 안된다고 본다. 좀 더 차원 높은 역사 속으로 안내헤 그 때의 생생함을 되살려 주고 목숨 바쳐 사라져간 영령들의 애국심도 들려주는 산교육을 뜨겁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고 흐름 속 에 피의 전쟁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6.25의 민족적 비극은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남북이 갈라져 점점 두 동강 땅이 제 각각 굳어져 가고 민족의 얼도 사라져 가고 문화와 국가 이념도 다 바뀌어 버리고 있는데 언제쯤 한겨레 땅덩이 속에서 백의민족이란 말을 꺼낼 때가 있을까 라는 꿈같은 바램... 행여 이웃나라 이야기 같은 말씀이 되는 건 아닌지 아찔해 지기도 한다.

이렇듯 유월의 6.25는 나에게는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부모형제와도 헤어지고 형제도 죽고 꿈도 빼앗긴 채 문전걸식을 했던 어린소녀의 비극적 일 막 의 시초이다. 이런 끔찍한 일은 후손에겐 절대 없어야한다. 웬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꾸짖어도 노파심에서 보면 이해가 되리라본다. 아니, 이해하여 준다면 위로가 되겠다. 그러나 절망만 있는 것도 아님을 안다.

희망은 있다. 희망은 힘이다. 지금 우리는 젊은 용기가 충천하고 창의, 창출, 국가발전 밀어올리기, 민족사랑, 후손의 영광을 위하여 다함께 땀 흘리고 있지 않은가. 꿈과 희망, 야망과 실천, 바야흐로 조국사랑이다. 나 한사람의 행복이나 욕심을 버리고 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지키신 보훈가족에게 감사의 눈길도 보내드리자.

아들은 어미의 유월이야기를 경청하듯 잘 들어주고 있다. “네 맞아요. 어머니 말씀이 참 훌륭해요. 그 어떤 강의보다도 훌륭합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조국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만은 않아요. 밝고 힘차고 희망의 나라로 국민모두가 땀 흘려 건설 할 때입니다. 어머니 손자는 행복해야죠. 전쟁 속에서 울고 헐벗고 꿈도 빼앗겨서는 절대로 안돼요.” 아들은 나를 위로 하고 있었다. 참으로 귀하고 고운 아들이란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보았다.

서울톨게이트에 진입하고 있었다. 어느새 어둠이 곳곳에 등을 밝혀 야경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유월의 시(詩) 한 수 읊어본다.

유월의 노래. 느티나무 밑으로 / 긴 그림자 밟고 있는 너 / 어느 사이 / 시간을 넘어온 너는 / 오후의 한 가운데로 몰려온다

가슴에 묻어둔 가버린 친구 / 다시 찾아와 이름표를 붙이는데 / 나는 너를 위해 무얼 줄 수 있을까 / 피를 토한 칸나의 절정인가 / 숨막힌 맥박을 식히고 싶다

유월은 아름답고 슬픈 하늘 / 눈물이 반짝인다

용광로 뚜껑을 열기 직전 / 너는 기지개를 켜며 운전석에 앉아있다. /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 이글거리는 알몸으로 뽐내고 싶은가

유월은 왔는데 아직도 / 나뭇가지에 모자를 걸어둔 너는 / 빈자리 나그네 떠난 자리 / 지키고 있는가 기다리고 있는가 / 느티나무는 / 미루나무는 성근 땀 등에 지고 / 초여름 유월을 잡아맨다

▲ 한국문인협회 회원 ▲ 광명문인협회 명예회장

▲ 광명문학대상 ▲ 광명예술대상 수상

정기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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