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 유모차

 

유모차를 밀고 가는 노파의 뒤를 따른다. 노파가 유모차를 끌고 가는지 유모차에 노파가 밀려가는지 분간이 안될 만큼 노파의 허리가 휘어있다. 한때는 아이의 웃음이 굴러다니고 아이의 기저귀가 실려 있을 공간에 엉성하게 접힌 박스 몇 개와 폐지가 실려 있다. 굽은 허리를 들척이며 노파는 연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버려진 폐지가 있으면 주워 실곤 한다. 낡을 대로 낡은 런닝 아래로 축 늘어진 노파의 젖가슴이 도로변 접시꽃처럼 흔들린다.

방지턱을 넘던 차량의 긴 경적도 아랑곳없이 건너편 폐휴지를 향해 길을 건너는 모습이 짠하여 천천히 노파의 뒤를 따른다. 살짝만 건드려도 푹 쓰러질 것 같은 노파의 불안한 걸음사이로 헐렁해진 몸빼바지가 허리를 타고 내려오고 유모차도 힘들다고 삐걱인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손자를 싣고 다니며 아이의 재롱을 받아내던 노파였다. 아이가 자라자 아이 교육 때문이라며 아들내외와 손자는 외국으로 떠났다. 처음엔 자리 잡으면 모셔가겠다고 했지만 이젠 소식조차도 끊긴지 오래다.

남편 일찍 여위고 삯바느질로 아들 박사 만들고 그 힘으로 산다던 노파, 젊어 혼자되었지만 착하고 성실한 아들을 자식삼아 남편삼아 살던 어른이다. 아들 박사 되던 날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다며 이제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그 아들이 훌쩍 외국으로 떠나고 이제 혼자남아 빈집을 지키고 있는 노파. 모든 것을 자식에게 올인하고 이제 폐휴지를 모아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자식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고 세상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재산이 있어야 효도 받고 힘이 있어야 어른 대접 받는다며 죽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재산은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어른들의 생각이다. 재산 꼭 붙들고 있다가 노후를 지켜줄 수 있는 자식에게 준다든가 아니면 노후를 의탁할 수 있는 시설을 선호한다,

얼마 전 자기의 아이를 만졌다고 노인에게 행패를 부린 지하철 女가 세상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는가 하면 보다 못한 어른의 충고 한마디에 앙심을 품고 보복을 하는 젊은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의식의 변화와 삶의 환경이 빠르게 변화되고 배려보다는 이기주의가 성행하고 있다지만 기본을 지킬 줄 아는 사회, 인성이 바른 사회, 교육이 필요할 때가 지금이다. 아무리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하지만 섬김의 문화가 실종되어 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아이들이 다 사용하고 난 유모차를 어르신들이 밀고 다녀서 요즘은 낡은 유모차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아 고물상이나 아이를 키우는 집에 미리 부탁을 할 정도로 유모차에 대한 인기가 좋단다. 노인정이나 어른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유모차가 몇 대씩 놓여있는 것을 본다. 유모차를 의지하여 나들이를 하고 시장을 보고 또, 폐지를 주워 삶을 근근이 꾸려가는 일까지 많은 일에 도움이 되고 있다.

기다림도 지쳐 이젠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노파, 설마 어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래도 한번쯤은 오지 않겠느냐는 노파의 긴 탄식에 서글픔이 묻어난다.

/한인숙 시인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