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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경솔한 예단(豫斷)의 부끄러움

 

지난 주는 날씨가 매우 불순해서 마음마저 영향을 받아 칙칙했는데, 두 가지 경험 때문에 일기예보처럼 한때는 흐렸다가, 한때는 맑았다, 오락가락했다.

퇴근길 국도변에 대학 옥수수라고 가로, 세로 1미터 가량의 광고 널빤지를 붙여놓고 노변에서 장사를 하는 남녀가 있다. 아주 어려 보였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났는데 매번 남녀가 키들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금슬 좋은 부부구나…….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

확 트인 국도라 항상 제한속도를 넘어 빨리 달렸다. 언젠가는 그들이 행복해하는 이유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차! 매번 지나치고 나서 후회한다. 그날 따라 비가 억수로 쏟아져 평소보다 훨씬 서행을 할 수밖에 없는데 멀리서 간판이 보였다.

마음먹고 차를 세웠다. 비오는 날 손님은 귀한 법인데 손님은 제쳐두고 무엇이 좋은지 지네들끼리 깔깔대고 웃다가 부스스 손님을 맞이했다. 그러나 결혼하기에는 앳되보였다.

“부부 사이입니까”

화들짝 놀라면서 “아니, 아직은 아니에요. 올여름에 돈 벌어서 가을에 식 올릴 겁니다.”

자세한 답이 필요 없는데... 숱하게 오가는 뜨내기손님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정직했다. 슬슬 싱거워졌다.“그럼 장사 마친 후 각자 헤어집니까?”

쓸데없는 질문이라는 듯이 빤히 보더니 “우리 동거(同居)한지 3년이 넘어요. 돈 아끼지 뭣 하러 따로 방 얻고...”

동거가 주는 의미는 그리 떳떳하지 않은 단어인데, 그들은 당당했다. 내가 생각해도 한심할 만큼 싱거워졌다.“삼년이면 알 것 다 알았는데 무엇이 그리 재미납니까?”

배시시 웃으면서 “오늘 우리 30만원 벌었어요.”

그래 맞다! 최소한의 항심(恒心)에도 항산(恒産)은 필요한 법이다. 옆에서 보기에도 흐뭇했다.

우리네 시절엔 미혼이면서 동거를 한다면 어딘가 불륜과 비슷한 칙칙한 냄새를 풍겼는데 그네들은 물론 듣는 이조차, 전혀 그런 느낌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기특했다.

미혼과 동거는 부끄러운 것이라는 통속적인 관념이 부끄러웠다. 세월이 달라진 것이다.

문신(文身)한 사람을 겁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참을 인(認)자나, 한때 치기(稚氣)에 화살이 꽂힌 하트표시에 LOVE(러브)라고 문신한 사람도, 등짝에 호랑이 큰놈으로 시커멓게 문신한 사람을 보면 기가 죽는 법이다.

동네 목욕탕에서 처음 보는 30대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등 밀어줄 터이니, 자기 등도 밀어 달라고 하는데 아니! 빡빡머리에 등엔 독수리 문신... 영락없이 갓 출소자의 모습이다.

싫다고 거절할 분위기가 못되었다. 그러나 얼마나 정성들여 등을 밀어주던지 전문 세신사(洗身士, 옛날 표현으로 때밀이)의 형식적인 솜씨보다 훨씬 좋았다. 한때 어리석게도 문신을 자랑 삼았는데, 지금은 아무리 더워도 옷을 입고 잔다고 지금은 부끄럽다고 했다.

문신을 완전히 지우려면 세 차례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 벌면 제일 먼저 병원을 찾겠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겁이 났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얼마나 살갑게 느껴지던지!

솔직히 다음 만날 것을 기약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목욕을 먼저 끝낸 나에게 일부러 뛰쳐나와 공손히 음료수를 건넸다.

미혼 동거는 나쁘다, 문신은 고약하다? 예단의 가벼움, 부끄러웠다. 작은 일상에서 커다란 교훈을 얻었다.

○… 앞으로 결혼 후 부부가 다툴 때 “내 생각에는”, “왜냐하면”, “그 이유는” 이런 말을 사용하면 큰 싸움은 피할 수 있다고 충고했더니 덤으로 옥수수 다섯 자루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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