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암매장과 의문의 실종, 전모 가려질까"
14일 수원지검에 의해 신도를 살해, 암매장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진 영생교는 그동안에도 수차례 신도 폭행 및 살해 등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현재 의문의 실종자로 꼽히는 신도만도 10여명에 달한다.
이에 따라 검찰이 영생교 신도살해 전모 등을 밝혀낼지 주목된다.
특히 신도들로부터 억대 헌금을 뜯은 혐의로 징역 실형을 선고받기도 한 교주 조희성(72)씨가 신도 살해를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생교 신도 살해사건은 지난 1995년 3월 신도 소모(42)씨가 용인시 내사면 제일리 학촌마을 쓰레기 매립장에서 살해 암매장된 채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영생교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강력부는 소씨 살해사건 수사에 착수, 박모(50)씨 등 당시 영생교 행동대원 4명이 1986년 1월 영생교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소씨를 마구 때려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씩 선고됐다.
당시 검찰은 교주 조씨의 범행 지시 여부 등을 수사했으나 살인혐의는 밝혀내지 못한채 영생불멸론 등 교리를 내세워 치모씨 등으로부터 헌금 2억1천여만원을 뜯는 등 신도 16명으로 모두 8억7천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했었다.
조씨는 같은 해 10월 이 사건으로 징역 7년에 배상명령 8억7천만원을 선고받았었다.
검찰은 특히 1989년 이후 실종된 영생교도 20여명이 소씨와 마찬가지로 살해암매장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또 영생교 피해자 가족 대책협의회는 당시 발견된 소씨와 13일 발견된 지씨 등 외에 모두 16명이 실종됐다고 주장했었다.
다음은 대책협의회가 밝힌 주요 실종자(괄호안은 실종당시 나이).
△안경렬(36)〓조희성씨와 함께 밀실생활을 하며 수련생활을 한 사이. 조씨의 비리를 많이 알고 있고 그의 권위에 도전, 독립해 제단을 설립하려고 해 제거된 것으로 추정. 87년 2월7일 오후 2시경 코란도 지프를 운전하고 가다 행방불명돼 2개월후 대청댐에서 지프만 발견됨.
△김철순(54)〓영생교 신도로 안경렬씨 실종 당시 목격자.
△이영구(53)〓승리제단의 총무과에 근무하던 중 89년 따로 독립해 광주 '3천년성'이라는 사이비종교 교주 이현석씨와 내통한다는 이유로 지하실에 2개월간 감금됨. 영생교를 빠져나온 후 90년 부산 개금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중 영생교 간부로부터 만나자는 전화연락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
△양해금(60)〓영생교 신도 1번. 90년초 조희성씨와 알력이 생겨 인천 주안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따로 예배를 보자 살해위협 당함. 91년1월 광주 3천년성 교주를 만나러 간다고 나간 후 행방불명.
△전영광(50)〓영생교 승리신문 편집국장. 91년말 고(고) 탁명환씨가 운영하던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 출입하면서 영생교의 비리를 폭로하려다 92년 2월 승리신문 후임 편집국장 김정웅씨를 만나러 나간 후 실종.
△박차선(62·여)〓영생교 구역장을 지냄. 양해금씨가 인천에서 독립해 예배를 볼 때 신도들을 인천으로 빼돌리는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시흥시 소재 은혜원에서 감금당해 구타당한 뒤 행방불명.
△김종웅(45)〓영생교 기업인 (주)근화실업의 전신인 삼일실업 설립자. 조희성 교주와 의견충돌이 잦아 90년6월께 안성저수지로 낚시하러 갔다가 행방불명된 후 타고 다니던 승합차만 한강둔치에서 발견됨.
김찬형 기자 chan@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