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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스프링 벅

 

시험 보는 대학에는 엄청난 인파들이 우르르 몰린다. 그 모습이 마치 아프리카 초원을 맹목적으로 달리는 스프링 벅을 연상케 한다.

아프리카 초원에는 스프링 벅이라는 산양이 있다. 무리 지어 살기 때문에 제일 뒤에 따라가는 녀석은 먹을 풀이 없다.

풀을 먹기 위해 앞으로 나간다. 달린다. 그러면 풀을 뜯어 먹던 다른 놈들은 영문도 모르고 내달린다. 모두들 그냥 달린다. 이제는 달리기 위해 달린다. 앞에 낭떠러지가 나와도 멈추지 않는다. 그냥 내리 달려 모두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다.

이제는 대입 수시2차 원서모집도 다 끝났다. 각종 언론에서 수능 시험이 워낙 쉽다고 설레발 쳤기에 어려웠다는 우리 아이들 목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시험 잘 본 아이들은 어디 있는 걸까.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울상이다. 자신 있는 영역조차 시쳇말로 ‘죽 쒔다’ 그나마 외국어영역이 조금 괜찮았는데 이마저도 다른 아이들은 거의 100점이란다. 지난 6월, 9월 모의고사보다 엉망인 성적이라 11월 30일에 나오는 수능 성적표는 받으나 마나다. 그러니 부지런히 논술시험이나 적성시험을 보러 다녀야 한다. 시험 보는 대학에는 엄청난 인파들이 우르르 몰린다.

그 모습이 마치 아프리카 초원을 맹목적으로 달리는 스프링 벅을 연상하게 한다. 다른 대학 논술을 치르기 위해 퀵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는 모습은 영락없다. 모두들 어디로 저렇게 달릴까, 왜 달릴까. 우리는 모두 무엇을 위해 저리 달리고 있을까.

아들 녀석은 수능 이후가 더 바쁘다. 수능이 끝나자 바로 논술 준비를 했다. 주말이면 이 대학, 저 대학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어느 대학은 난생 처음 본 문제가 나와 당황해했고 또 어느 대학에서는 제법 몇 자 적고 나왔다. 그런데도 녀석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언제나 시험장을 가득 채운 엄청난 인파가 화제였다.

“그래서 시험은 어떻게 쳤는데….” “에이, 그건 금기야. 아빠.”

시험에 대해서는 서로 물어봐서는 안 된단다. 친구들끼리도 전혀 시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녀석이 오늘은 저녁 내내 나를 붙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정말 미친 듯이 축구했어. 몸이 너무 좋아해. 오후 내내 공을 찼어.”

아들은 지금 해방 축제 기간이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 귀한 시간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그러니 오늘도 미친 듯이 공을 차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더니 제 엄마 옆에 착 달라붙어 이야기를 나눈다. 참 보기 좋다.

이게 몇 년 만인가. 큰 아이 3년, 그리고 아들 녀석 3년. 그렇게 꼬박 6년을 우리 집은 적막강산이었다. TV볼륨 크기도 늘 2, 3이었다. 거의 들릴 듯 말듯. 덕분에 우리 집에서 TV는 벽을 장식하는 소품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모처럼 생기가 돈다. 아들 녀석 목소리가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린다.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다시 신문에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고입이다. 경쟁이라는 피라미드 저 밑에 줄줄이 서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있다. 다양한 고등학교에도 아이들은 제 적성과 꿈보다는 자기가 들어갈 그 때 대입이 어떻게 변할까에 신경을 더 쓴다. 저 아이들과 부모들도 TV볼륨을 낮출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낼게다.

그런데 우리 이런 짓 언제까지 해야 할까. 이젠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을까. 경쟁적으로 치달리다 모두들 낭떠러지로 떨어져야 비로소 그만둘 텐가. 그땐 이미 너무 늦다.

우리 교육이 살아날 기회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이다. 오늘, 우리, 경기교육이 바로 하늘이 준 해결의 실마리이다. 우리는 경쟁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 교육, 서로를 배려하고 살리는 생태 교육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 스프링 벅의 무모한 질주를 멈추게 할 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김덕년 안산 선부고 교사 경기도 진학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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