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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아, 어쩌란 말인가…

 

살다보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외롭고, 쓸쓸하고, 허전한 이런 감정은 사치라고 쉽게 넘길 수도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돈, 건강 이런 일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이때 문득 의지하고 싶은 것이 종교-신앙이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고 있다. 가짜 약을 먹어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어딘가 의지하고 싶은 본능 때문이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고통을 준다고는 하지만 ‘하필 나에게만 왜 이리도 혹독한 시련을…’ 이렇게 신을 원망하면서 부정할 때도 있다. 가끔은 성직자들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직자란 종교적 직분을 맡았을 뿐 그분들에게 신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신부, 목사, 스님에게 천주와 예수, 부처를 찾는다면 그분들에게도 짐이 되고, 당연히 실망하는 법이다. 종교를 아주 큰 범주에서 문화라 한다면 성직자들은 단순한 문화의 전달자인 것이다.

어떤 종교이던 간에 나름대로 가치 있는 법이다. 고모 한 분이 재혼을 했다가 또 사별을 하고 일남 이녀의 가장으로 오만 풍상을 다 겪었다.

아들이 어렵게(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만 졸업)세무사 시험에 합격한다. 그러나 개업 전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버린다. 세상에 이런 박복(薄福)한 팔자가 어디 있을까? 보통 이 같으면 눈물 마를날 없겠지만 지금까지 운명을 원망하지 않는다. 대단한 백, 고모 뒤에는 하느님이 떡 버티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 영세와 세례를, 구약과 신약을 혼동한다. 한때 방송 밥을 먹던 시절, 자주 불교에 관한 소재를 다뤘다.

“나는 목탁이에요”. 목탁을 의인화한 프로그램으로 과분한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종교, 저 종교를 많이도 기웃거렸다. 탐색(?)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 딱 부러진 인연이 없어서 아직까지 방황하고 있는데…, 스님은 스님대로 신부님은 신부님대로 핀잔을 준다. 바람쟁이라면서…, 이 여자는 눈이 예쁘고, 저 여자는 이마가 반듯해서 좋고…, 맞는 말이다.

며칠 전 신부님 칠순 잔치를 열었다. 키는 큰데 눈과 입술은 오목조목하다. 여성스럽다. 웃으면 눈이 감길 정도인데 말할 때도 조근조근, 낮은 목소리로 말씀해서, 얼핏 보면 천진스럽지만 감히 범접 못할 위엄이 있다. 편안하게 대해 주지만 항상 주위를 긴장하게 만든다.

저녁 자리에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환자촌에 자주 갔는데 어느 날 큰 싸움이 났단다. “문둥이 꼴값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구경하는 것은 오늘 처음이네” 당사자들이 피식 웃고 싸움을 그만두더란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야 이 문둥아 오랜만이다” 이런 다정한 인사가 어디 있겠냐만…. 당사자들에게 문둥이라고 하면 크게 싸움날 일이다.

그들은 신부님을 같은 병을 견디는,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생질이란 말은 어딘지, 내 피 같은 누이 아들 혼사에 신부님이 주례를 하셨다 독특하게 진행했다. 존칭이 아닌 말을 놓고 두 사람을 상대로만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부모의 정을 느꼈다.

종신토록 정절, 그리고 검소한 생활이 의무라고 하지만 조금만 밥이 비싸도 우스개를 섞어서 슬며시 무안을 준다.

나는 칠종죄(七宗罪)(교만·인색·미색·분노·탐욕·질투·나태)의 화신이라고 솔직한 고백을 해도 담담히 웃는다. 알면 됐다 - 이런 뜻인지?

고모를 생각하면 주님이, 신부님을 보면 천주님이 그립고….

가끔 보는 텁석부리 스님도 나에게 애정이 무한한데 아! 어쩌란 말인가…, 어찌됐던 그날 밤 무척 행복했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 前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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