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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좌 뒤 책거리 통해 문체반정 의지 드러내

 

조선후기 책거리의 유행은 정조(재위 1776~1800)와 관련이 깊다.

정조는 강력한 왕권 정치를 실시해 가던 7년(1783) 11월, 규장각에 궁중 화원 직제를 신설하고, 정기적으로 실력을 시험하는 등 이들을 후원하고 재교육하였다.

정조는 화원 시험의 주제로 ‘책가(冊架)’와 ‘책거리(冊巨里)’를 정하여 그리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좌 뒤에 오봉병 대신 책거리 병풍을 장식하고 흡족해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한 정조는 분주하여 책을 읽지 못할 때 책을 그린 책거리 병풍을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런데 책거리 병풍을 어좌 뒤에 펼친 것은 신하들에게 무언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연출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문체반정(文體反正)의 교시이다.

정조는 “요즈음 사람들은 글에 대한 취향이 완전히 나와 상반되니, 그들이 즐겨 보는 것은 모두 후세의 병든 글이다. 어떻게 하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이 그림을 만든 것은 대체로 그 사이에 이와 같은 뜻을 담아두기 위한 것도 있다”라고 했다.

즉 당시 청나라로부터 수입한 패관잡기 등의 통속적인 글을 비판하면서 정통적인 고문에 대한 진흥을 염두에 두고 책거리를 제작하게 했다.

그림을 통해 정조가 추진한 문체반정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한 것이다.

열 폭 병풍 모두에 책을 빼곡하게 쌓은 책가를 그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책가도’는 조선 왕실의 유물로 정조가 어좌 뒤에 설치한 책거리 병풍과 가장 유사한 도상으로 보인다(사진).

조선후기에 책거리를 잘 그린 화원으로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김홍도를 비롯하여, 풍속화가 신윤복의 아버지인 신한평, 이형록의 할아버지인 이종현 등이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책거리 그림은 전하는 것이 없다.

이들 중 김홍도는 서양화법으로 책가도를 그리는데 뛰어났다는 사실이 조선후기 화가들의 전기를 정리한 이규상의 ‘일몽고’ 화주록에 전해진다.

“당시 화원의 그림은 서양의 사면척량화법(四面尺量畵法)을 새로이 본받고 있었는데,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한쪽 눈을 감고 보면 기물들이 반듯하고 입체감이 있어 보였으니 세속에서는 이를 가리켜 책가화라고 한다. 반드시 채색을 칠했으며, 당시 상류층의 집 벽에 이 그림으로 장식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김홍도는 이러한 기법에 뛰어났다.”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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