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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최종수 과천향교 전교

 

 

우리 예절과 효를 알리는 최종수 과천향교 전교
인성교육위해 과천명륜대학 설립
글·사진 ㅣ 김진수 국장 kjs@kgnews.co.kr

조선시대 인재양성의 산실이었던 과천향교를 다섯 살 철없던 꼬마는 아버지 손에 잡고 들락거렸다. 일곱 살 때 서당에서 동몽선습(童蒙先習)과 계몽편언해(啓蒙篇諺解)을 익혔고 초등학교 시절엔 향교 아래 수령 3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 칠판을 걸어 공부를 하기도 했던 아이는 석존대제 봉행 시 아버지가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어렵게 제공한 제수를 앞에 놓고 재배를 올렸다.

 

어린 마음 한구석 유교문화가 자리 잡은 것은 당연했다. 그 아이는 훗날 빠름과 편리함에 젖어 날로 피폐해져가는 현대 사회를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 알리기로 다시 한 번 지나간 날을 뒤돌아보고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를 만드는 인물로 우뚝 선다.

과천시 막계리 응달말에서 지난 1941년 태어난 과천향교 현 최종수 전교는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8년간 과천문화원 원장 직을 재임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지역주민들의 가슴에 깊이 심었다.

취임 첫해 그가 역사의 재조명사업 일환으로 손댄 일이 추사 관련 사업이었다.
 

 

 

 


과천시에서 제안한 이 사업은 청계산 자락인 주암동에 과지초당이 있었고 추사가 오랜 귀양살이를 끝내고 말년을 이곳에서 지냈다는 사실이 출발점이었다.

현재도 계속되는 이 사업은 추사와 연관된 작품전시회, 문헌번역, 학술대회 등 튼실한 가지를 쳤지만 가장 큰 업적은 일본 학자로부터 추사작품 등을 기증받은 일이다.

“추사 서거 1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오랜 기간 추사를 연구한 부친에 이어 유업을 이어간 후지츠카 아키나오를 초대하기 위해 지난 2005년 여름 일본에 건너갔습니다. 그 때 서재 한켠에 추사 작품을 발견하는 순간 기증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요.”
 

 

 

 


간곡한 기증제의를 처음엔 완거하던 아키나오는 최 원장이 가져온 방대한 추사연구자료를 보고 이런 사람이라면 애지중지하게 보관하던 자료를 소중히 다루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증 자료는 추사 김정희 친필 등 서화류 46점과 청나라 및 조선시대 고서 2천800여점으로 추사 가족사 연구와 조선과 청나라 학자들의 교류를 짐작케 하는 소중한 근거가 될 것으로 평가됐다.

그는 이 공로로 정부로부터 국민포장을 받는 개인적 영광도 누렸고, 그 일로 과천에 국내 최초 추사박물관 건립을 일군 성과도 거뒀다.

100년간 닫혀 있던 과천향교, 시민들 곁으로 성큼

지난 2009년 5월 일제의 민족성 말살 정책으로 100년 간 빗장을 걸었던 과천향교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열린 문으로 들어온 첫 손님은 의외로 유림이 아닌 학생들이었다.

‘우리 춤’, ‘우리 향교’, ‘우리 색’, ‘우리 글’, ‘우리 음악’ 바로알기 등 다섯 갈래로 나눠 진행하는 ‘향교 날개를 달고’란 프로젝트가 시작된 순간이다.

초·중·고생, 시민들은 이곳에서 대나무 잎, 치자, 울금, 단풍나무 잎, 국화, 모시 잎을 이용한 천연염색 체험을 했고 가곡, 가사, 시조 등 정가(正歌)를 따라 부르고 배웠다.

또 대금, 세피리, 해금, 거문고, 가야금 등 전통악기에 심취하고 춘추 석전대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교육기관이었던 향교는 외부와 단절된 채 지방문화재로만 존재해 왔습니다. 교육기능을 되살리는 길이 무얼까 모색하던 끝에 찾은 것이 ‘향교 날개를 달고’사업으로 호응도가 높았지요.”

과천이 효의 고장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정조대왕의 효심어린 능 행차의 자취가 지금도 남아있고 추사의 효행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무엇보다 조선 대표적 효자인 최사립이 부모가 사경을 헤맬 때 단지(斷指)로 살렸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고장도 과천이다.

“정보홍수와 기기문명의 발달로 참 편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우리 민족이 결코 잊어서도 버려서도 안 되는 귀한 유산이 효 사상입니다. 다만 과거는 효를 가르쳤지만 지금은 스스로 깨닫게 해야 된다는 것이 차이겠지요.”

그는 효 실행의 구체적 방안으로 향교개방사업과 비슷한 시기 ‘최사립 효 문화제’를 개최했다.

과천향교와 관내 문인협회, 사진작가협회, 선바위미술관, 한뫼국악예술단 등이 동참한 효 문화제는 백일장과 그림 그리기대회, 효사랑 사진 콘테스트를 열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효 가치를 깨닫게 하고, 세미나와 포럼을 개최해 이 시대의 효 방향에 대해 진지한 토론도 벌였다. 부모들은 아이가 행사 참여 후 달라졌다고 반색했다.

전통문화 계승사업은 과천에 전승돼 온 나무꾼놀이와 무동답교놀이 재현에도 힘을 쏟아 그 맥을 잇게 했다.

가보 800여점 시민들 위해 기증한 전통문화 알리미

조선 개국공신 최유경(金有慶)은 산세 뛰어나고 인심 좋은 과천 응달말에서 말년을 보내기로 작정한다.

그로부터 500여년이란 장구한 세월, 자자손손 한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며 살아온 막계 최씨 집안이 보관한 문서들은 과천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근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농경사회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었다.

27대손인 최종수 전교는 가보처럼 내려왔던 이들 문서들을 재작년 과천문화원에 모두 기증했다.

선대들의 희로애락이 깃든 각종 생활도구들도 함께.

당시 그는 “조상대대로 내려온 온갖 자료들은 한 집안 내력이기 이전에 근대 역사와 관계가 깊어 개인 서재에 두는 것보다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기증했다”며 “자라나는 세대들이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알고 계승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했다.

800여점에 달하는 기증물품은 ‘과천과 함께한 오백년의 발자취’와 ‘과천의 어제와 오늘’이란 제목으로 두 차례 전시돼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조선 말기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답안지를 묶어 만든 계연(桂蓮) 책,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준 조흘첩, 향교중수를 주도했던 과천문묘 성금수납부, 천세력(千歲歷)과 24절기별로 정리된 양력, 월표가 실린 조선민력, 잠상요의(蠶桑要)義), 누에 실 뽑는 기계 설계도 등.

지금은 보기 힘든 약탕기, 작두, 화로, 제기, 맷돌, 키, 조리, 절구통, 다식판, 다듬잇돌, 홍두깨, 고드랫돌, 저울대 등도 선보였다.

올 1월 전국에서 유례 없는 내리 4대에 걸쳐 과천향교 전교에 취임한 그는 두 달도 채 안 돼 과천명륜대학을 설립, 인성교육에 나서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잠시도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린다는 그 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공자나 맹자를 논하는 자리가 아닌 누구나 쉽게 다가와 예절과 효 정신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해 이웃에 사랑을 전하고 사람 사는 도리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줄 계획입니다.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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