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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론] 영혼 없는 관료들의 교육 삽질

 

이주호표 교육정책의 헛발길이 멈출 줄 모르고 임기말 또 하나의 대형 사고를 쳤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폭력 전수 조사 결과 공개가 그것이다. 학교폭력 전수조사 결과를 모두 공개했다가 객관성, 기준 등에 대한 논란이 일자 뒤늦게 공개 항목을 일부 삭제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책 없는 결과 공개로 스스로 화를 자초한 셈이다. 문제가 확산되자 급기야 이주호 장관은 “학교 현장에 공시의 취지를 충분히 알리지 못한 점 등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이례적으로 한 발 물러서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번 전수조사 결과 공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통계자료로 전혀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회수율이 25%에 불과했고, 피해 경험 응답률도 초등학교 15.2%, 중학교 13.4%, 고등학교 5.7% 등 학교 급이 높아질수록 낮았다. 전교생 600여 명 중 단 1명만이 응답한 학교도 있다. 이 학교의 경우 1명이 ‘학교폭력 피해를 겪었다’ ‘일진이 있다’고 답해 결국 피해응답률, 일진인식률이 100%가 됐다. 그런가 하면 아예 단 한 명도 응답하지 않은 학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성실하게 조사에 응한 학교가 오히려 폭력학교로 인식되는 부작용을 낳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후속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실태조사 후에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원인 진단이 나와야 하고 이를 토대로 후속 대책을 세우는 것이 일의 순서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대책 마련도 없이 불쑥 일을 저질렀으니, 관료들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교육행정 관료들의 가치와 철학의 부재 탓이다. 나는 언젠가 교육관료들과 교육 문제로 논쟁을 하던 중 그들로부터 “우리는 영혼이 없습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 스스로 영혼 없는 사람들임을 자임한 셈이다. 영혼 없는 이들의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교사에게 돌아온다. 영혼 없는 관료들에게는 그들만의 특성이 있다. 첫째, 그들은 언제나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상관의 지시가 있기 전에 능동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그러니 창조력과 상상력이 발현될 수 없다. 학교폭력 대책이 기존의 정책을 재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둘째, 그들은 손바닥을 쉽게 뒤집는다. 어제의 악덕이 오늘의 미덕이 되고, 어제의 선행이 오늘의 악행이 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일도 허다하다. 임신과 출산에 따른 학습권 침해를 예방하라는 지침을 시달한 그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임신, 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에 적극적 반대의사를 드러낸 것은 좋은 예다. 자가당착(自家撞着)과 곡학아세(曲學阿世)가 그들의 신분을 지켜줄 수는 있어도 교육자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성까지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셋째, 그들은 항상 정책 실패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다. 이를 위해 희생양을 찾는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아 공격할 땐 하이에나의 본성과 닮은 꼴이다. 정책 실패 원인을 전교조와 학생인권조례 탓으로 돌리기 위해 이념공세의 고삐를 바투쥐었을 뿐 사태의 본질을 찾기 위한 성찰을 그들에게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수조사 결과를 공개하면 학교폭력이 차단될 것”이라는 국정 최고 지도자의 천박한 현실 인식.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교과부 장관과 교육관료들. 그들의 교육행정 삽질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정치적·사회적 폭력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 학생은 많이 아프다. 교육은 만신창이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시간에도 교육정책 실패의 원인을 억울하게 짊어진 채 학생들 곁을 지키며 새로운 학교를 일구는 교사들을 믿기 때문이다. 제발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겸손해라. 교육관료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충고다. “윗사람의 명령이 공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唯上司所令 違於公法 害於民生 當毅然不屈 確然自守)는 다산의 말씀은 나를 포함한 이 시대 모든 공무원들에게 가장 절실한 가치다.

/조성범 군포 수리고 교사 경기도인권교육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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