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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피자배달에 나서라!

한때 우리 영화계에 신인감독 데뷔가 붐을 이루던 때가 있었다. 먼 얘기도 아니다. 1990년대의 일이다. 당시 영화계에는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있었다. 그즈음 미국영화 ‘쥬라기공원’ 한편이 국내에서 벌어간 돈이 우리나라 한해 자동차수출 총수익보다 많았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대기업 자본이 영화계를 기웃될만 했던 것이다.
기업자본은 속성상 수익을 좇는다. 작가주의니 예술영화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투자원금 뽑고 이익 남기면 그만일 뿐. 기업자본은 말안듣는 중견감독보다 때묻지(?) 않은 뉴페이스, 즉 부리기 좋고 말도 잘듣는 신인들을 선호했다. 덕분에 수많은 감독지망생들이 오매불망 기대하던 입봉(감독 데뷔)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문제는 데뷔가 곧 은퇴로 이어진 것.
당시 영화감독이라는 명패를 달게됐던 이들은 지금 뭘하며 살고 있을까. 가능성을 인정받아 중견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기간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 급기야 영화에 대한 꿈을 접어버린 사람도 있다.
필자가 작년에 만났던 후배 역시 입봉한 감독이었지만 지금은 아내와 피자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필자는 그 후배가 영화에 때한 꿈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모종의 단체를 결성, 생계를 위한 노력은 없이 제작자본을 대주지 않는 기업이나 그와 전혀 상관없는 정부를 상대로 생계와 지속적인 활동을 위한 지원을 요구하고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그런 요구가 사회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그와 비슷한 일들이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이른바 능력검증은커녕 활동도 미미한 숱한 문화예술인에게 끊임없이 지원만 하고 있는 문예진흥제도가 그것이다. 그렇게 지원받은 단체나 개인이 어떤 장르에서 이렇다할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던 예는 거의 찾기 힘들다. 어차피 예술활동을 위해 지원받는 게 아니라 지원받을 목적으로 문화와 예술을 팔아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즈음 그들과 정부간의 오래된 카르텔에 지각변동이 생길 조짐이 보인다. 정부로서는 더 이상 노력도 활동도 않으면서 단지 문화예술 단체라는 이유로 끝없이 지원을 요구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을 중단 혹은 축소하겠다는 의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문예진흥기금이 폐지되고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지원제도 전반을 조정할 전망이다. 그에 대한 기존 단체들의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보수 언론이 부화뇌동하고 있다.
근래 진보진영 인사들의 문화 관련 기관장 자리 독식과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일부 보수언론은 그것을 특정 세력의 문화계 점령기도라며 심각하게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진행되는 문화계 전반의 페러다임 전환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일일 뿐이다. 정부의 그와 같은 시도는 오랜 기간 온갖 특혜와 독점적 지위를 누렸을 뿐 문화예술 발전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던 단체 혹은 개인에 대한 한계를 인식한 정부가 꾸준한 학습과 체계적인 준비로 문화발전의 비전과 대안을 가진 새로운 세력에게 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주려는 것이다.
그에 대해 문화계 점령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다. 기존 집단이 발전적 고민없이 지원에만 의존하고 있을 때 감옥을 오가면서 민족문화에 대한 계승과 보급 등에 대한 신념으로 살던 사람들이 비로소 문화계 일각에서의 활동을 보장받게 된다면 그것은 문화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바야흐로 문화적 생산성이 경제적 생산성을 리드하는 시대다. 이제 문화도 예술도 경쟁원리에 의해 생명력이 좌우된다.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 매진하지도 않으면서 여전히 혜택과 지원에 안주하려 든다면 그는 필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생맥주를 나르거나 피자 배달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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