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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김창우"광대와 정치의식"

대중은 광대의 자유로운 정치풍자로 이 땅의 정치판을 신명난 민주주의로 건강하게 바꿔주길 바라고 있다

광대들의 마음속 족쇄는 언제 풀릴까?


 

 

 

대통령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 내어 인기를 끌어보겠다는 생각은 이제 더 이상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가벼운 정치풍자는 공중파 텔레비전의 오락프로에 등장한 지 오래고, 인터넷 방송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꾼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의 ‘나꼼수’ 현상은 선거철을 맞이하여 새로운 선거운동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풍자문화는 문화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가수와 영화배우 같은 광대들이 대거 동원되고, 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성향에 따라 자발적으로 선거유세에 참가하는 모습은 아직도 어딘가 이국적인 풍경이 아닌가 싶다. 수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인기 여가수 마돈나의 미국대통령 비판발언이나,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서 수상자가 자신의 정치견해를 발표하는 일들은 아직도 우리들에게는 글자 그대로 해외토픽쯤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최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신랄하게 비꼬는 연기로 화제에 오른 바 있다.

한국의 민주통합당이나 좌파정당의 전당대회에서 이런 연기를 하는 광대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왠지 국가원수 모독죄 같은 불안감이 떠오르고 정보기관의 보이지 않는 보복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새로운 대중매체로 떠오른 인터넷의 등장, 그리고 이 땅의 정치판에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는 세대교체의 바람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광대들의 정치의식이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으며, 광대들의 자유로운 정치풍자가 이 땅의 정치판을 신명난 민주주의로 건강하게 활성화시켜 주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독일 뮌헨 출신의 유명한 어릿광대 칼 활렌틴(Karl Valentin)은 히틀러 총통 관저에서의 공연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으며, 매카시 선풍에 휘말려 좌경용공의 반미분자로 낙인 찍혀 결국 미국을 쫓겨났던 찰리 채플린이 끝내 권력과의 타협을 거절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고수한 것은 모두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 이들의 고고한 광대정신은 광대라면 누구나 본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광대건 잡상인이건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자유롭게 펼칠 자유는 민주사회의 기본요건이며 그 소견의 보수성·진보성 여부는 다만 토론의 대상일 뿐이다.

일제가 물러간 지 오래지만 우리의 예술풍토가 아직도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암묵적으로 지켜져 온 소재의 제한과 광대들의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 총재의 선거유세에 나섰다가 부당하게 TV출연을 정지당했던 탤런트 박모씨, 집권당의 전당대회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치성 농담을 한 것이 물의를 빚어 생업을 잠시 중단해야만 했던 어느 어릿광대의 경우, 특히 통치자의 얼굴 모습을 닮은 죄로 천직 대신 몇 년간 기름장사로 입에 풀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느 TV광대의 경우는, 레닌의 모습을 닮았던 한 소련 광대가 훌륭한 대접을 받으며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사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같은 사례들은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의 지나간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MB정부에서도 광대들이 자신의 정치성향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풍토는 아직 이 땅에 정착되지 않았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광대들의 마음 속 족쇄가 아직 완전히 풀려버린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급관료들에 대한 정치풍자가, 만득이시리즈처럼 입에서 입으로만 돌지 말고 무대에서, 공연장에서 수면 위로 떠올라 공개적으로 널리 확산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웃으면 건강에 좋다는 엔돌핀이 많이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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