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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칼럼]박남숙"忘年會<망년회>는 일본이 원산지"

 

다사다난했던 2012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한해의 시름을 잊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망년회 장소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마치 명절이라도 되는 양 들뜬 기분으로 흥청망청 한해를 마감하려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망년회는 일본이 원산지다.

일본에서는 1400여 년 전부터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 하여 섣달그믐께 친지들이 서로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이 일본의 세시풍속이 일제 강점기에 한국으로 건너와 어느새 우리 풍속인 양 뿌리 내렸다. 국어사전에도 ‘연말에 한해를 보내며 그 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라고 올라 있을 정도다.

우리의 망년회 풍습은 유난히 극성스럽다. 직장동료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심지어는 크고 작은 모임들마다 제각기 망년회를 치러야 한해가 마감되는 줄로 안다. 술로 한해를 떠내려 보내기라도 하는 듯 인사불성이 되도록 2차, 3차까지 먹고 마시며 즐긴다.

하지만 우리의 본래 연말 풍습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상들은 한해를 차분히 되돌아보며 빚진 것들을 모두 갚는 달로 삼았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방 마루 부엌 마구간 측간까지도 집안에 불을 켜놓고 조왕신(부뚜막신)의 하강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는 연말 풍습이 있었다. 따라서 연말 1주일은 일 년 동안 자신의 처신에 대한 하늘의 심판을 기다리는 시기였던 만큼 경건하게 보내야 했다.

그러므로 일본의 망년회와 달리 우리는 연말 모임을 ‘송년회’라 불렀다. 송년은 한 해를 보낸다는 의미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의 송구영신과 맥을 같이한다. 따라서 송년회는 차분히 한해를 되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는 자리라는 의미다. 먹고 마시며 한해를 잊어버린다는 뜻의 ‘망년회’와 확연히 다른 날이었던 것이다.

원래 망년회의 망년은 망년지교(忘年之交), 또는 망년지우(忘年之友)에서 나온 말이다. 고려시대 명 문장가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나는 그때 열아홉이었는데, 오덕전(吳德全)이 ‘망년지우’가 되는 것을 허락해 매번 그 모임에 데리고 나갔다”는 글이 보여 주듯이 ‘나이 차이를 따지지 않는 사귐’이 망년회인데 이를 ‘망년지교’라고 불렀다. 오덕전이란 인물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는데 그의 시문이 중국 당나라 문장가 한유, 두보를 능가했고 특히 그의 3형제가 모두 당시의 이름 높은 학자였다. 그런 인물이 열아홉 풋내기에 불과한 이규보를 망년지우로 받아들여 우정을 나누었다는 것은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인물은 인물을 알아보고. 사귐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망년회란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서로 친구로 사귀는 모임이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날, 그간에 소원했던 사람을 찾아뵙고 또한 한해의 우의(友誼)에 감사하는 날이 진정한 망년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별것도 아닌 일로 인하여 멀어진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오해이든 자신의 불찰이든 간에 한해를 마감하는 순간 망년지교를 나누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한 해 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다른 사람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절(省察節)로 한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해가 저물어가니 후회스러운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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