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일 칼럼]인생학교에서 필요한 것
[채수일 칼럼]인생학교에서 필요한 것
  • 경기신문
  • 승인 2013.02.2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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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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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신대학교 총장

2월은 졸업식이 있는 달입니다. 졸업생들은 상급학교로의 진학, 혹은 취업 등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이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될 제자들에 대한 뿌듯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걱정과 근심이 앞섭니다. 취업하지 못한 제자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대학시절에 이미 세상을 조금 배웠다고는 하지만, 세상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합니다.

졸업생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 가운데 다수는 이제 더 이상 졸업장이나 학위 증서를 수여하는 학교를 졸업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졸업생들은 이제 전혀 다른 학교로 들어가게 될 것인데, 그 학교는 ‘인생학교’입니다. ‘인생학교’는 수업연한이나 교실, 학점도 교수도 없는 학교입니다. 죽기 전까지 졸업이 없는 학교, 자신이 학생이면서 스승인 학교, 책이 아니라 삶으로 배우는 학교,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경쟁상대인 학교,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자신이 지는 학교, 학점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인격으로 평가받는 학교가 ‘인생학교’입니다. 이런 ‘인생학교’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 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태 10,16). 끊임없는 소송과 무자비한 고문, 권력자들에 의한 박해와 죽음, 배신과 증오가 굶주린 이리같이 기다리고 있는 세상 속으로, 무방비상태의 양 같은 제자들을 보내면서 하신 예수의 말씀입니다.

예수는 뱀을 지혜의 상징으로 말했지만, 창세기는 간교함의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창 3,1). ‘지혜’와 ‘간교함’은 서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데, 언제 어떤 배경에서 이런 상징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교함과 지혜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세태의 주장처럼, 내편이 하면 지혜, 적이 하면 간교함이라는 주장도 마치 두 갈래로 갈라진 뱀의 혀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혜와 간교함을 구별할 수 있는 길은 ‘편 가르기’가 아니라, 그 열매로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따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악마도 충분히 지혜롭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는다’(마태 11,19)고 예수는 말했습니다. 간교함과 지혜는 결국 그 사람의 삶의 결과로 차이가 입증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결함이 배제된 지혜는 언제든지 간교함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충분히 현실적인 판단(뱀의 지혜)이 배제된 순결함은 유치한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바로 이런 실존적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함의 긴장 속에서 충분히 현실적일 만큼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충분히 비현실적일 만큼 순결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했던 것입니다.

이런 긴장이 경계하고자 한 것은 이른바 ‘사이비 순교’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는 순교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태 10,23)라고 했습니다. 순교에 대하여 경계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우리는 당시 순교강박증, 종교적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힌 인물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런 소영웅주의적 순교강박증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대의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챙기는 사이비 순교자들 말입니다. 순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의 은총을 입은 이들이나 가는 길이지 소영웅주의적 강박증에 사로잡힌 소인배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인생학교는 충분히 현실적일 만큼 지혜로우면서도 충분히 비현실적일 만큼 순결한 삶을 산 이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수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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