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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학교폭력’이 아니라 그냥 ‘폭력’이다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집에서 말고 옥상에서 불편하게 이렇게 적으면서 눈물이 고여. 하지만 사랑해. 나 목말라. 마지막까지 투정부려 미안한데 물 좀 줘.” 다시 읽어도 콧날이 시큰합니다. 잠시 마음을 추슬러야 겨우 말을 이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도 “목마르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어린 영혼의 마지막 당부는 결코 ‘학교폭력’을 끝장내지 못합니다. 당신도 알고, 저도 알고, 우리 모두 알지요. 지난해 대구에서 같은 불행이 발생했을 때도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습니까? 나라에서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이란 걸 내놓았지요. 저도 학교폭력 관련 토론회 몇 곳에 불려 다녔습니다. 그러나 경산에서 발생한 불행은 작년 대책이 별무효과였다는 걸 보여 줍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 봅니다만 이거다 싶은 묘안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전문가라는 분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봐도 시원치 않습니다. 이제 또 한바탕 법석을 떨다가 서서히 잊고, 다 잊힐 무렵이면 가슴이 아파 차마 읽기 어려운 글을 또 대해야 하는 건 아닌지…. 이게 뭡니까?

신통한 방안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작은 제안을 하나 해보려 합니다. ‘학교폭력’이라는 용어를 가급적 쓰지 말자는 겁니다. ‘학교폭력’은 본디 의도가 무엇이든 문제를 학교 안에 가두는 효과를 낳습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예방과 해결의 책임이 학교와 교육 관계자에게 있다고 강하게 암시하지요.

하지만 따져봅시다.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폭력이 과연 ‘학교폭력’입니까? 그건 그냥 ‘폭력’입니다. 학교 밖 어른사회의 폭력을 작은 규모로 모방하거나, 흉내 낸 것이라 하여 ‘학교폭력’이라는 별도의 범주로 분류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학교폭력’은 학교가 풀고, ‘폭력’은 사회가 맡는 이분법은 우스꽝스럽습니다.

폭력의 가해자-피해자가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폭력’이라고 한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이들의 일시적 실수를 성인 폭력과 같이 묶는 것은 무리라고 보는 거지요. 일리가 있습니다. 성장하는 학생들에게 순간적 과오로 낙인을 찍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사실 제가 학교 폭력 토론회에서 놀란 점은 가해학생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 짐작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입니다. 상당수 학생들, 선생님들, 교육전문가들이 폭력적 학생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반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람은 변할 수 있고,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아닌가요? 이 믿음을 버리면 무슨 교육이 남지요?

제가 ‘학교폭력’이라는 용어 대신 그냥 ‘폭력’이라고 하자는 건 처벌의 측면에서 그러자는 게 아닙니다. 물론 당연히 형법으로 다스려야 할 폭력이 있을 테고, 소년범으로 취급해야 할 행위들이 있겠지요. 이런 일들까지 학교 안에 가두고, 학교만 닦달해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학교폭력’도 ‘폭력’도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폭력 외에 단지 어린 시절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잘못은 어디까지나 교육적 견지에서 해결하자는 게 제 입장입니다. (‘학교폭력’이라고 굳이 써야 한다면, 엄격하게 이런 경우로 한정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처벌보다 훨씬 중요한 건 가르침입니다. 한데,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더 이상 가르칠 게 남아 있을까요? 학생들이 정작 잘 모르는 건 ‘폭력’의 본질과 대응법 아닐까요?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평화학’을 정식 교과목으로 가르치자 이겁니다. ‘학교폭력’은 학생 생활지도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폭력’은 머리로, 가슴으로, 손발로 예방하고 대처하고 줄여 나가도록 가르쳐야 할 영역입니다. 저는 한국의 초중고 교과목에 ‘평화학’이 독립과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학교폭력’은 어감상 잘 하면 근절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인간사회에서 폭력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하듯이 ‘학교폭력’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폭력 근절’은 기만이지요. 특히 ‘학교폭력’이 그 사회의 폭력을 쏙 빼닮았다면 근절은 완전 말장난입니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폭력과 평화의 관계를 가르치고, 그런 사회를 어떻게 실현해나갈 것인지 학생들과 깊이 고민해 보는 겁니다. 유럽에서는 진작부터 하고 있지 않습니까? 목이 마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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