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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경제와 혼(魂)

 

의외였다. 당연히 지역 언론과의 갈등이 가장 큰 고민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편협한 나의 예상과 달리 더 깊고 넓었다. 지역 언론의 비판은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이기 때문에 달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형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지역본부장의 세계관은 바다였고 나는 실개천이었다. 사실상 G1인 중국은 시진핑(習近平)시대를 맞아 리커창(李克强)과 함께 전열을 정비해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고, 일본은 엔저 효과를 통해 경제대국 탈환을 꿈꾸고 있는데, 우리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갈 지(之)’자 행보를 하고 있어 걱정된다는 것이 고민의 요지였다. 깊은 슬픔이 묻어났다.

하여, 갑자기 든 생각 하나. 우리나라의 ‘갈지 행보’는 어디에 기인(起因)하는가.

고민은 당연히 일제강점기에 닿았고 21세기 한국사회의 ‘갈지 행보’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역사가 병들면 나라의 체제는 썩는다. 화려한 미모 속에 감춰진 암세포처럼, 역사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일제가 당시 조선의 역사를 폄훼(貶毁)하고 폄하(貶下)하는 데 제국의 운명을 걸었던 것이다. 식민사관의 논란은 단순히 역사학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관에는 그 시대의 세계관이 농축돼 있다. 그런 까닭에 문화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법, 종교 등 사회 모든 영역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물론, 현재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가 식민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지는 않겠지만 자유롭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다. 일제의 식민사관은 아직 한국사회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왜 그럴까. 식민사관으로부터 이득을 얻고, 그 이득을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대물림하려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굴까. 식민사관을 확대 재생산하는 그룹의 뿌리에 일제가 만든 ‘조선사편수회’가 있다고 일부 학자들은 지적한다. 그곳에서 일제의 은전(恩典)을 받은 사람들이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했고, 그들이 대를 이어 일제에 보은(報恩)하고 있다고 피를 토한다. 그 보은의 결과가 현재 한국사회 모든 분야를 왜곡시킨 주범이라는 주장이다.

일제의 당시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적 관점은 1941년 6월 법무대신 야나가와 헤이스케(柳川平助)의 기자회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우선 조선인 사상범을 모조리 거세해 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히틀러 총통은 이미 유대인 거세를 실행하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서쪽에서는 독일·이탈리아 양 민족, 동쪽에서는 야마토(大和)민족이 다른 민족을 통치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이기도 한 것이다.”

일본의 법무대신이 공식석상에서 “불령선인은 모조리 거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오만이 하늘을 찔러 신(神)도 잡아먹을 기세다.

또 있다. 1960년대에 일본인 학자가 일제 강점기에 주요 역할을 했던 일본인 수십명을 대상으로 취재하면서 일본의 한국지배에 대해 물었다. 그들 모두는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이렇게 답했다.

“일본의 조선지배는 구미(歐美)류의 식민지배가 아니다. 조선을 일본으로 만든 것이다. 조선 사람을 일본 사람과 같이 천황의 적자로 삼았던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식민지인가.” 이 정도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일본의 식민사관은 황국사관에 근거한다. 황국사관은 이렇다.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 천황의 계시를 받들어 영원히 통치한다. 모든 일본 국민은 한마음으로 천황의 뜻을 받들고 충성과 효도의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세계관을 일제는 식민지 조선에 주입시켰고 그 뿌리는 해방된 조선을 넘어 현재 대한민국에 이르러서도 굳건하다.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방위에 걸쳐 교(巧)하고 묘(妙)하게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식민사관을 적확하게 뚫어보고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아직 이 땅은 식민지인지도 모른다. 2만 달러 시대 역시 허상일 수도 있다. 또 하나. 단언컨대, 이런 식민사관이 주류를 이루는 한 일본은 절대로 경제대국이 될 수 없다. 혼(魂)이 없는 경제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이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의 고뇌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함께 해야하는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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