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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해(70) 경기도유도회 회장직무대행

 

경기도 유도는 지난해 열린 제9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종목 우승 14연패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전국 최강의 위용을 과시했다. 또 같은 해 벌어진 제41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도 최다 메달이라는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넓은 저변과 탄탄한 실력을 자랑한다. 특히 남녀초등부 각 12개 팀, 남중부 13개, 여중부 10개, 남고부 5개, 여고부 4개, 남녀대학팀 5개, 남녀실업팀 5개 등 국내 최다팀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경기도 유도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경기도 유도의 도약기부터 발전기, 현재의 중흥기까지 숨은 공로자를 자처하며 도 유도 발전에 묵묵히 힘써온 이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이충해(70) 경기도유도회 회장직무대행이다.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타고난 운동 실력

1944년 전남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에서 출생한 이충해 도유도회 회장직무대행은 어려서부터 소위 ‘큰 주먹’을 자랑하는 ‘골목대장’일 만큼 남다른 풍모와 리더십을 지녔다. 담양 한재초를 거쳐 담양 한재중에서 잠시 복싱선수로 활동한 그는 광주상고(현 광주동성고)에 입학, 남들보다 늦은 시기인 고교 1학년 때 유도를 시작했다.

유도 경력 불과 2년 만에 전국체육대회의 유도 도대표로 선발돼 출전했을 만큼 타고난 운동 능력을 자랑했던 그는 1965년 대한유도대학(현 용인대 유도학과)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현재 한국 엘리트 체육계의 수장이자 용인대 유도학과 3년 선배인 김정행 대한체육회장(용인대 총장)과 그와의 특별한 인연도 그때 시작됐다.

그는 “김정행 회장님은 실력으로나 인품으로나 당시 후배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던 선배였다. 대학 합숙소 생활 시절은 물론 군생활 시절 불침번을 서고 있는 와중에도 묵묵히 체력훈련을 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유도 선수로 군복무를 마친 그는 1973년 전남 나주공고에서 체육교사로서 교직에 몸을 담았다. 하지만 교사 생활에 적성을 느끼지 못한 그는 2년 만에 교편을 내려놓고 1975년 수원으로 올라와 사업을 시작했다.
 

 

 

 


제2의 고향 수원서 지역발전 기여

전남 담양지역에서 이름난 ‘만석꾼’인 선친의 사업 수완을 물려받은 덕이었을까,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수원에서 사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경기도새마을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지역발전에 기여했다.

사업가임에도 유도인의 사명을 잊지 않고 경기도 유도 발전을 위해 묵묵히 지원을 아끼지 않은 그는 1982년 도유도회 전무이사로 정식 부임하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경기도 유도’ 발전을 위해 매진한다.

이 회장직무대행은 “경기도가 인천에서 분리된 직후였던 탓에 조직 정비도 제대로 안 돼 있었고, 마땅한 선수도 없어 전국체전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도내 방방곡곡을 다니며 선수를 발굴하고 특별 훈련 등을 철저히 펼친 끝에 결국 2년 뒤 전국체전에서 종목 정상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홀로 동분서주하며 경기도 유도의 저변 확대와 기량 향상을 위해 나선 이 회장직무대행의 노력은 결국 경기도가 한국 유도의 ‘메카’로 급부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가 전무이사를 맡은 이후 현재까지 경기도 유도는 전국체전에서 총 26차례 종목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며 전국 최강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이후 22년 간 도유도회 전무이사를 지내며 경기도 유도가 전국 최강의 자리를 지키는 데 일조한 그는 1993년부터 도유도회 수석부회장으로 취임하며 대외적으로도 폭넓고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유도회 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1987년 유도 종주국인 일본과 경기도유도회의 결연을 통해 교류전을 개최, 한국 유도가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또한 1995년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 대회 한국선수단 단장, 2001년 러시아대통령컵 국제유도대회 단장 등 총 20여 차례 국제유도대회에 한국 국가대표의 선수단장으로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이끌어내며 각종 훈장과 표창을 받기도 했다.

1991년부터 14년 동안 오산시청 유도팀 감독을 맡아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한 그는 1995년부터 16년 간 경기지방경찰청 무도연구지도관으로서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들에게 유도를 통한 체포술을 가르쳤다. 경찰체포술은 범인을 잡는 데 유용하게 쓰일 뿐 아니라 유도의 근본이념인 예(禮)와 도(道)를 가르쳐 경찰관의 정신수양에 일조했다.

유도 꿈나무 위한 장학사업도 추진

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오산대 경찰경호행정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하며 경찰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유도의 참된 가르침을 전하는 등 후학양성에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형편이 어려운 학생선수들에게 사재를 털어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유도 꿈나무를 위한 장학사업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경기도유도회 회장직무대행으로서 매년 각종 도내 유도대회는 물론 전국체전, 소년체전 등 대회가 열리는 현장을 직접 찾아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유도’ 그 자체라는 그에게도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여자 유도의 금맥이 끊긴 것이다. 한국 여자 유도는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 72㎏급에서 김미정(현 용인대 교수)과 1996 애틀랜타올림픽 66㎏급 조민선(현 한국체대 교수) 이후 유독 올림픽에서만은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그는 “한국 남자 유도는 이제 종주국인 일본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큼 세계 정상권에 들어선 반면, 여자 유도가 20년 가까이 올림픽 무대에서만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며 “하지만 매년 세계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만큼 2014 인천아시안게임은 물론 2016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유도가 시상대 맨 위에 서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오로지 유도 하나만을 바라보고 걸어온 길에 단 한 점의 후회도 없다는 그는 “그동안 경기도 유도의 발전은 나 혼자만이 아닌 수많은 선수들과 지도자, 도유도인들이 합심한 결과다. 더불어 한국 유도가 세계적으로 발전하게 된 데 감개무량하다”며 “앞으로 일선에서 물러나더라도 영원한 유도인으로서 경기도와 한국 유도 발전을 위해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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