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경제포커스]개성공단과 ‘민족경제’

 

1928년 윈스턴 처칠이 우화 한 편을 남겼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어느 날 동물원에서 동물 모두가 모여 무장해제를 결의하고 이를 위한 평화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했다. 회의에서 코뿔소가 말하기를, 이빨 사용은 야만적이고 공포스러우니 만장일치로 금지하자고 했다.

뿔은 주로 방어용이므로 당연히 허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버펄로, 수사슴 그리고 저 작은 고슴도치조차도 여기에 찬성을 표했다. 그러자 사자와 호랑이가 이의를 달았다. 이빨은 물론이고 발톱조차도 저 까마득한 과거로부터 전해온 명예로운 무기라고 했다. 판다, 표범, 퓨마 나아가 작은 고양이족 모두가 사자와 호랑이를 지지하고 나선다. 그러자 곰이 발언하면서 이렇게 제안했다. 이빨이건 뿔이건 둘 다 금지해야 한다. 싸움이 벌어지면 서로 꼭 껴안는 것(hug)만 허용해도 충분하다. 그것이야말로 형제애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평화를 향한 거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모든 다른 동물들은 곰에게 격분했다. 당연히 회의는 가열되었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다행히 이때 중재자가 나타나 이들을 진정시켜, 각자 조용히 우리 속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이들은 서로 친근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이 북의 ‘남침’에 대비해 벌인 일련의 ‘방어’훈련을 놓고 자신의 공화국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남한과 미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이야말로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므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까이서 보기에 이쪽, 저쪽 다 맘에 안 들었던지 중국은 모두 모여 ‘허그’하면 어떠냐고 한다. 서로 자신의 무기가 ‘방어용’이고 상대방의 핵과 대포는 ‘공격용’이라고 우기는 사이, 정작 개성공단이 유탄을 맞았다. 결과는 거의 사망선고 직전까지 가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몇 가닥 호스에 기대 연명하는 모양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거늘 이 황금률이 지켜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가 상대방의 이빨이 무섭듯, 나의 뿔 또한 상대방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기본 중에 기본조차 수용할 아량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이럴 때에는 그저 조용히 각자의 우리 안으로 들어가, 다시 친근감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고 박현채 선생이 ‘민족경제’론을 갈파한 바 있다. 탈 종속, 자주경제론이라 부를 만하다. 민족경제론은 또한 좀 거칠게 말해 남북관계까지를 시좌에 넣고 한국경제를 분석한 관점이라 할 만하다. 얼마 전 일군의 학자들이 크게 보아 이 연장에서 한반도경제론을 주창한 바 있지만 아직 그 울림은 미미하다. 한국경제에서 ‘민족경제’의 실물적 비중을 따지자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서 개성공단은 ‘민족경제’의 상징처럼 보인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과연 ‘통일’의 경제적 비용이 우리 모두에게 남는 장사인지 아닌지 속단하기 어렵다. 모르긴 해도 그 통일의 경제적 부담 또한 계층이나 지역별로 불평등하게 배분될 우려가 클 것이라 예상되긴 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글로벌경제 조건은 ‘민족경제’를 흘러간 옛 노래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글로벌 성장전략이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지금, 특히 ‘경제민주화’와 내수확장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민족경제를 되돌아 평가해 볼만도 하다. 더군다나 개성은 그저 경공업 중심 중소기업 자본을 북의 노동력과 결합시킨다는 식의 접근을 훨씬 뛰어넘는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지정학적 리스크’, 쉽게 말해 북한변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동인이라고 할 때, 개성이라는 상징재의 시장가치는 실로 막대하다.

나아가 남북관계의 안정화와 지속가능한 평화체제의 안착이야말로 중소기업 성장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아무튼 이번 개성공단 사태를 보면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아직 개성공단이 너무 작구나, 정치적 외풍을 이겨내기에는 자본의 규모가 안 되는구나 하는 점이었다. 더 크고, 더 많은 개성공단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이른바 ‘린치핀’이자 경제민주화의 주요한 디딤돌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