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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메모 단상(斷想)

 

메모는 습관이다. 그리고 메모는 잊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잊기 위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메모가 습관화 되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꾸준하게 행동한다는 자체를 어렵게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의 메모 달인들’ 저자 최효찬은 “메모는 정답이 없다. 필요한 내용을 자기가 알아볼 수 있도록 기록하는 부지런함과 어떤 상황이라도 창피해하거나 눈치 보지 않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앤더슨 에릭슨 심리학 박사가 제시한 10년의 법칙처럼 메모도 일정 수준의 성과와 성취에 도달하려면 최소 10년간 집중적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1년간 메모로 전문가적인 안목을 키운 뒤 그 관점으로 10년간 쭉 메모를 해야 어느 정도 습관화 된다고 하니 어렵지 않은가.

하지만 습관이 길들여지면 자신에게는 크나큰 유익으로 작용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정치가, 철학가, 예술가 등 수많은 인물들이 습관에 길들여진 메모광이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링컨은 긴 모자 속에 항상 연필과 종이를 넣고 다녔고, 슈베르트는 식단표는 물론 앞사람의 등에도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한 것으로 유명하다. 에디슨의 메모 수첩은 사후에 4천200개나 발견됐다고 한다. 습관화된 작은 메모로 인해 역사와 미래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는 힘이 발휘되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창시절, 연포(蓮圃) 이하윤(異河潤·1974년 작고)의 수필 ‘메모광(狂)’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글은 “어느 때부터인지 나는 메모에 집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와서는 잠시라도 이 메모를 버리고는 살 수 없는, 실로 한 메모광이 되고 말았다”라고 서두를 적고 있다. 그리고 “메모는 생애의 설계도요, 뇌수(腦髓)의 분실(分室)이며, 쇠퇴해가는 기억력을 보좌하는, 인생생활의 축도(縮圖)”라고 예찬했는데, 메모가 인생의 길잡이라는 표현에 감동받은 나머지 거금(?)을 들여 메모용 수첩과 볼펜을 새로 마련했던 기억도 새롭다. 이 수필은 최근까지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명수필로 인정받고 있으며, 메모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꼭 인용하는 고전으로 통한다.

메모에는 수첩이 가장 잘 어울린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다이어리와 함께 노트북이나 전자수첩,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등도 이용되지만 역시 펜과 수첩이다. 그러나 이보다 메모와 더 잘 어울려야 하는 것은 ‘내용’일 것이다. 그 내용에 따라 인생과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또는 각종 의혹에 연루돼 패망의 길로 가기도 해서다.

요즘 적자생존, 즉 ‘적는 사람이 생존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곳이 있다.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덕아웃이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끄러워야할 덕아웃이 조용하다. 선수들에게 메모 습관을 강조한 김진욱 감독 때문이다. 김 감독은 시즌 초, 선수 스스로가 자신과 상대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전력 분석원이 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메모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 후부터 선수들은 상대 투수의 구질이나 선수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기내용, 지시 사항 등을 수첩에 적느라 혼잡할 틈이 없다. 선수들 사이에 살기 위한 키워드가 성적보다 ‘수첩’과 ‘메모’로 바뀐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메모 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인사스타일마저 ‘수첩 인사’로 표현되니 말이다. 박 대통령은 눈여겨본 인사들을 필요할 때 기용하는 방식으로 수첩 메모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때문에 야당이 대통령의 나 홀로 인사를 비판할 때 즐겨 쓰는 문구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이런 대통령의 메모가 윤창중이라는 늪에 빠져 에러가 났다. 그리고 지난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만찬에서 취임 이후 자신의 인사 실패를 인정하기도 했다.

이번 경우에서 살펴보면 정확한 판단을 동반하지 않은 메모는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피해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적어 놓은 메모가 부실해 보일 때, 이하윤은 수필 ‘메모광(狂)’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 분명하지 못한 자신의 필적을 응시숙려(凝視熟慮)해 보건만, 결국 신통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또한 적지 아니하다. 연상(聯想)의 두절(杜絶)로 인한 무의미한 자획이 한동안 내 머릿속을 산란하게 해주었을 따름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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