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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2013 초여름 밤의 꿈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을 이렇게 끝맺는다. “혹시 저희 요정들이 한 짓이 마음에 안 드시거든 이렇게 생각해 주십시오. 잠시 조는 동안에 꿈을 꾸신 거라고요. 그래야 화도 풀리실 것 아닙니까? 이 빈약하고 요령도 없고 허황된 연극을 부디 심하게 꾸짖지 마십시오.” 요정 왕 오베른의 어릿광대 퍼크의 대사다.

남북의 대화 국면이 후다닥 닭싸움으로 막을 내렸다. 직전까지 ‘전쟁불사’라더니, 느닷없이 날을 잡는다느니 통신선을 복원한다느니 북새통을 피우다가, 그래 차분히 지켜나 보자 했더니, 격이 어쩌고 급이 저쩌고 하다가 순식간에 판이 엎어졌다. 잠시 졸면서 초여름 밤의 꿈을 꾼 건가 싶다. 그런데 사과하는 퍼크도 없다.

이산가족들은 섭섭하기 짝이 없을 터이다. 남쪽 개성공단 입주기업도, 북쪽 개성공단 노동자도 땅을 칠 노릇일 게다. 나름 분주했을 통일부와 통전부·조평통 관계자는 물론이고, ‘혹시나 금강산도…’ 은근 기대를 걸었던 현대아산 관계자도 허탈하긴 마찬가지겠다. 그러나 이건 꿈이 아니다. ‘빈약하고 요령도 없고 허황된’ 한반도의 현실이다.

물론 남과 북의 집권세력은 잃은 게 없다. 서로 상대를 맹비난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질 기회를 잡았다. 물론 둘 다 속으로는 어렵사리 얻은 대화의 실마리를 놓쳐 버린 점이 몹시 아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남도 북도 그런 내색조차 없다. 차라리 정치적 타격이 컸다면 냉철한 반성이라도 뒤따랐으련만.

퍼크의 대사를 마저 들어보자. “이 빈약하고 요령도 없고 허황된 연극을 부디 심하게 꾸짖지 마십시오. 용서하시면 앞으로 힘써 고쳐 나가겠습니다. 다행히 비난의 힐책을 모면한다면 머지않아 좀 더 나은 솜씨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모두를 대표하여 이 정직한 퍼크가 약속드리겠으니 그렇지 못한다면 저를 거짓말쟁이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

자신의 최고 희극 말미에서 셰익스피어는 짐짓 능청을 부린다. 반면 남북관계 역사상 가장 이상스러운 모습을 연출한 당국자들은 서로를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북은 실무접촉 과정의 이면을 공개하고 나섰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막후교섭 내용을 까발리는 건 하지하책이다. 이래서야 다음을 기약하기 어렵다.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는 남북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청와대의 지적도 답답하다. 현 정부의 당당한 자세를 강조하겠다는 뜻은 좋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과거의 남북관계를 ‘굴종과 굴욕’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유치하다. 아무리 정치적 득이 크다 해도 정권이 앞장서서 남남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대화 무산 후에 청와대와 통일부가 내놓은 발언과 태도를 종합해 보면 이전의 남북관계 역사와 사실상 단절하겠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말로는 7·4공동성명 이래 남북이 거둔 성과들을 승계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사소한 관행조차도 입맛대로 바꾸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대화 상대방이 이젠 우리와 동등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우월의식도 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단절의 방식으로는 ‘비난의 힐책을 모면’하기도 어렵고, ‘좀 더 나은 솜씨를 보여’ 주기도 어렵다. 역사에 비약이란 없는 법이다. 그동안 축적된 유형무형의 소중한 관계자산들을 이렇듯 무시하고서는 한 걸음도 제대로 떼기 버거울 수밖에 없다.

청와대 진단대로 지금의 갈등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일환인지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맞으려면 청와대가 이 갈등을 풀어나갈 확실한 ‘패’를 쥐고 있어야 한다, 갈등에서 대화로 이행하는 또 다른 고리를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한여름 밤의 잠꼬대 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면 곤란하다. 현 정부가 훨씬 더 꼬여버린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낼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한여름 밤의 꿈>은 얽히고설킨 극중 인물들의 애정관계가 척척 풀리면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요정나라 여왕 티타니아가 지나가던 당나귀를 사랑하게 되는 어이없는 코미디조차 그래서 유쾌하다. 그러나 2013년 6월16일 북한은 돌연 북미 고위 당국자 회담을 제안했다. 우리의 한여름 밤의 꿈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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