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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짝퉁 해병대 캠프의 비극

 

태안 ‘짝퉁’ 해병대캠프에 ‘극기훈련’을 받으러갔던 고등학생은 공주사대부고 2학년생 198명이었다. 연례행사로 해병대 캠프를 선택한 학교의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캠프가 아이들을 강인하게 단련시켜 줄 것이다. 최소한 진짜 고생이 뭔지 맛보게 해줄 것이다. 군기 바짝 든 아이들은 다루기 쉽다. 그러나 생떼 같은 목숨 다섯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뿐이다. ‘해병대 미신’이 낳은 비극이다.

‘남자다운 남자’ 강박증

큰 아들이 해병대에 입대한 직후 아내 몰래 인터넷에서 해병대 생활을 검색해보곤 했다. <마린이의 일기> 따위 코믹 터치 수기나 과장이 섞인 훈련무용담이 많았다. 그 중에 잠수복 차림으로 물속에서 식사를 하는 사진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저 자세로 밥을 먹는 게 정말 가능해? 해병대 애들은 전부 저런 훈련을 거치는 건가? 아들 생각에 눈물부터 쏟을 아내에겐 차마 보여줄 수 없었다.

휴가 나온 아들은 픽 웃었다. “그런 훈련은 특수한 애들만 해요.” 자신이 남자답다는 걸 확인해 보겠다며 입대한 아들은 훈련에 대해, 군 생활에 대해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제대할 때까지 사고가 없기를 속으로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극기란 게 뭘까.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봉체조를 하고, 진흙 펄에서 기진맥진할 때까지 뒹굴고, 구명조끼도 없이 실신할 때까지 바닷물을 마셔야 도달하는 경지? 강압적인 명령 아래서 자신의 육신과 의지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절감하는 일?

고생 모르고 자란 아이들에게 고생이 뭔지 체험해 보게 하자는 거야 그리 나무랄 일이 아니다. 늠름한 해병 수색대 장병을 남자다운 남자라고 간주하는 심리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짜 정글도 아닌데, 모든 남자가 그런 식의 ‘남자다운 남자’가 될 필요가 있나. 그건 강박증일 뿐이다.

태안사건 이후 ‘짝퉁’ 해병대 캠프를 힐난하는 소리가 드높다. 비인도적이고 무지막지한 훈련을 강요당했다는 체험 학생들의 폭로가 잇따른다. 전국 30여 개 해병대 캠프 가운데 1곳만 빼고는 모두 해병대와 관련이 없단다. 또한 짝퉁 캠프마다 무자격 교관이 설쳤다고 한다. 태안 ‘해병대 리더십교육센터’ 교관도 12명 중 6명이 무자격자였다.

그러나 교관이 자격자고, 캠프가 진짜 해병대 것이었다면, 비극적인 사고가 정당화될 수 있나? 사고를 당한 학생들은 해상침투훈련 중이었다고 한다. 고교생에게 해상침투훈련이 왜 필요한가? 단 며칠의 시뮬레이션으로 나약한 아이가 진짜 남자로 거듭날 거라는 믿음은 얼마나 황당한가?

진짜 사나이와 냉전 신화

전국의 짝퉁 캠프가 30개나 된다는 건 흘려 볼 일이 아니다. 명령과 위계질서로 작동하는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다운 남자,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냉전의 신화’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군대에 대해 갖는 야릇한 양가감정이 여기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병대 출신인 큰 아들은 모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인 군대 체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육군 공병 제대한 작은 아들도 그 프로그램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뭐 좋은 기억이라고 또 보냐는 거다. “<진짜 사나이>보다는 <푸른 거탑>이 훨씬 더 사실적이에요.” 큰 아들의 말이다. <푸른 거탑>은 군 생활을 코믹하게 다룬 케이블 TV 프로그램이다.

청소년들 체력이 갈수록 부실해진다는 우려가 있다. 엄밀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다들 그렇게 믿는다. 성격이 자기중심적이고, 의지가 약하다는 지적도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들 나름으로 자신이 살게 될 세상에 대비하고 적응하는 중이라는 주장은 잘 먹혀들지 않는다. ‘짝퉁’ 해병대 캠프에라도 보내보자는 심리가 그래서 번지는 거겠지. 그러나 만기제대 하면서 군기(軍紀)를 ‘반납’하고 돌아오기 예사인데, 그깟 사나흘 ‘짝퉁’ 캠프에 다녀왔다고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지랴.

삼가 다섯 고교생의 명복을 빈다. 가슴이 찢어질 그들 부모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아울러 모든 학부모들에게 이번 사건의 함의를 깊이 되짚어보자고 간곡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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