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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선수와 지도자 간의 신뢰

 

대한역도연맹이 1일 국가대표 선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역도 대표팀 총감독의 보직을 1개월 동안 해임했다. 대한역도연맹은 당초 해당 감독에 대해 1개월 동안 태릉선수촌에 입촌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할 계획이었지만 연맹이 여론의 비난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면서 정작 피해자인 여자 선수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1개월 보직 해임을 결정한 것이다.

해당 감독은 지난 5월 31일 태릉선수촌에서 역도 여자 국가대표인 A선수에게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치료실로 데려가 엉덩이 등의 신체부위를 만지는 등 A선수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A선수가 지난달 31일 진정서를 대한역도연맹에 제출하면서 알려졌다. A선수는 당시 선수들의 마사지 등을 전담하는 트레이너가 있었는데도 감독이 직접 마사지를 했다면서 “이 사건을 혼자 묻어둘 수 없다고 생각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했고, 나 말고 다른 선수에게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감독이 사과하고 감독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부상 때문에 최근 열린 국내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A선수는 해당 감독과 얼굴을 마주치기 두려워 태릉선수촌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감독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자신이 경찰 조사를 받는 것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해당 감독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오해가 있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기자회견 내용을 들은 A선수는 감독의 기자회견 내용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체육계의 성추행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성 지도자가 부족한 현실에서 남성 지도자가 여성 선수를 지도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종목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오래 전부터 여성 선수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남성 지도자들이 선수의 몸을 만지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선수들의 인권 문제가 강화되면서 성추행 문제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잦아지면서 신체접촉이 많은 종목의 지도자의 경우 여성 선수에 대한 지도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모 종목의 지도자는 “과거에는 여성 선수들을 지도하기 위해 몸을 부딪치고 허리를 감싸는 등 신체접촉이 잦았지만 성추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었다”며 “최근에는 여성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성추행 주장이 나올까 두려워 신체접촉은 생각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알려줘야 할 기술을 말로만 설명하다 보니 기술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과거 여성 선수를 지도했던 또 다른 지도자는 “여성 선수들을 지도하는 게 남성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보다 2배 이상 힘들다”고 전했다. 이 지도자는 “성추행 문제가 불거질까 봐 지도자로서 제대로 기술을 전수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회 참가를 위해 지방 출장을 다니는 경우도 많은데 여성 선수들과 함께 다니면서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물론 사심을 갖고 고의로 여성 선수들과의 신체접촉을 시도하려는 지도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자신에게 배운 선수가 좋은 선수로 성장해 소속 팀을 빛내고, 더 나아가 국가를 빛내는 대표선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클 것이다. 이번 성추행 문제뿐만 아니라 선수와 지도자 간의 문제는 신뢰 부족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선수와 지도자간의 신뢰가 두터울 때는 신체접촉이 기술 전수를 위한 행동으로 비춰지지만 신뢰가 깨질 경우에는 성추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체육현장을 뛰어다니면서 많은 선수와 지도자를 만난다. 훈련과정을 지켜보면서 여성 선수에게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신체접촉을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그들이 땀 흘리며 훈련하는 동안 기술을 전수받는 선수도, 기술을 전수하는 지도자도 머릿속에 성추행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여성이 신체접촉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그것은 분명한 성추행이다. 하지만 선수와 지도자 간에 확고한 신뢰가 쌓였다면 이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지도자 생활을 해온 한 체육계 원로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많은 선수들을 키우면서 생각한 것은 오로지 하나였어. 선수와 지도자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훈련해야 하고, 거기에는 두터운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선수든 지도자든 사심을 갖고 함께 정한 목적 외의 것을 취하려 한다면 둘 사이는 깨질 수밖에 없다. 스포츠는 스포츠 그 자체로만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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