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실 경기도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
이성실 경기도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
  • 노경신 기자
  • 승인 2013.08.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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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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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 펜싱, 수영, 사격, 육상 등 전혀 다른 5개 종목을 1명의 선수가 하루 동안 겨루는 ‘근대5종’은 고대올림픽 5종경기의 정신을 계승한 종합 종목이다. ‘바이애슬론’은 크로스컨트리와 사격이 결합된 종목으로, 1960년 제8회 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대표 동계 종목이다.

두 종목 모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의 저변은 결코 넓지 않은 만큼 아직 비인기종목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100세를 바라보는 망백(望百·91세)의 나이에도 식지 않은 열정으로 비인기종목인 이 두 종목이 경기도 체육에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을 쏟는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성실 경기도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이다.

1923년 7월 30일, 평양 선교리에서 4남 1녀 중 4남으로 태어난 이성실 부회장은 일곱 살 되던 해 가족이 함경남도 원산(현 북한 강원도 원산)으로 이주하며 그 곳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이후 원산상업학교에 진학해 교내 대표선수로 활약한 탁구를 비롯 승마, 연식정구, 농구, 배구 등 다양한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자연스럽게 체육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특히 둘째 형님이자 1940년대 한국 연식정구의 1인자였던 故 이성배(1992년 작고)씨의 영향을 받아 연식정구에도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졌다.

원산상고를 졸업한 뒤 원산시청에 취업, 공직의 길을 걷기도 했던 이 부회장은 1942년 오늘날의 농업협동조합 격인 조선식량영단(해방 후 대한식량공사)으로 이직해 조국의 광복을 맞았다. 이듬해 경기도와 인천시가 분리되기 전인 1946년 대한식량공사 인천지부로 파견을 나온 그는 이 시점을 계기로 경기도와 인연을 맺었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부문에서 재건이 이뤄졌던 1954년, 그는 경기도연식정구연맹(현 경기도정구협회)의 창립 부회장으로서 본격적인 ‘경기도체육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55년 당시 고교 농구 명문이던 인천 송도고 등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도농구협회를 세우며 2년 넘게 초대 회장으로 활약했던 이 부회장은 1958년에는 경기도승마협회를 창립, 회장도 없이 15년간 전무이사로서 협회를 꾸리며 경기도 승마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기간 화물운수업체인 ㈜신흥운수를 설립,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던 이 부회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체육인으로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완전한 인간을 추구하는 올림픽의 진정한 이념이 담긴 ‘근대5종’을 관장하는 경기도연맹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1988년 12월 승마 국가대표를 지낸 배창환 초대 회장(현 대한바이애슬론연맹 회장)과 함께 경기도근대5종·바이애슬론연맹을 창립하며 비인기 종목의 불모지인 경기도에서 근대5종과 바이애슬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도근대5종·바이애슬론연맹 초대 전무이사로서 그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팀 창단. 연맹 창립 첫해인 1989년 4월, 그는 교기가 핸드볼인 부천공고를 직접 찾아 십고초려 끝에 경기도 최초의 고교 근대5종팀인 부천공고팀이 탄생되는 데 산파역할을 했다.

당시 그는 안양 신성중·고교 김명길 감독의 추천을 받아 부천공고를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며 송찬석 교장을 설득했다. 우선 부천공고에는 교내 수영장은 물론 체육관도 마땅한 곳이 없어 팀을 만드는 데 정말 어려움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에 국군체육부대를 찾아 부천공고 선수들의 훈련 장소 제공 및 합동 훈련 협조를 이끌어낸 그는 부천공고 근대5종부의 조력자로서 사재를 털어가며 아낌없는 지원과 관심을 쏟았다. 그 결과, 부천공고는 창단 1년 만인 1990년 제7회 회장배 전국근대5종대회와 제1회 체육부장관기 대회를 석권하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지금은 두 종목이 분리됐지만 당시 중앙연맹이 묶여있던 이유로 이 부회장은 하계 시즌에는 근대5종, 이어 동계 시즌에는 바이애슬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등 동분서주했다.

부천공고 근대5종부가 창단된 이후 그는 도내 바이애슬론 고교팀 창단을 위해 가장 먼저 포천시를 찾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도내 스키장이 있는 곳이라고는 베어스타운 소재지인 포천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포천 일동고를 찾아 당시 스키선수들을 주축으로 경기도 최초의 바이애슬론 팀을 창단시킨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포천시는 현재 운담초-일동중·이동중-일동고-포천시청으로 이어지는 ‘경기도 바이애슬론’ 연계육성의 메카로 발돋움했다.

이 부회장은 “지금이야 스키 장비가 다양하고 저렴해졌지만 1990년대만 해도 일반인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고가였다. 하지만 당시 배 회장께서 매년 어려운 선수들과 우수 선수, 지도자들을 위한 장학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고 나도 사재를 털어 아이들에게 훈련비 등을 지급해 마음 편히 훈련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게 오늘날 포천시가 바이애슬론의 명가로 발전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후 2004년까지 16년 간 도근대5종·바이애슬론연맹의 전무이사로 지낸 이 부회장은 비인기 종목이던 경기도 근대5종의 전국체전 6회 우승, 문광부장관기 시·도대항대회 6연패, 겨울철에는 경기도 바이애슬론의 전국체전 4회 우승 등을 견인했다.

특히 경기도 체육인 원로들의 모임인 경기도체육인회 발족에도 적극 나서며 선·후배 체육인들의 권익 향상에도 앞장섰다.

60여년의 세월을 스포츠와 함께해온 이 부회장은 구순을 넘긴 고령임에도 직접 운전대를 잡고 경기장을 누비며 손자뻘 되는 경기도 선수단의 선전을 독려한다. 지난 2월 강원 평창에서 열린 제94회 전국동계체육대회를 비롯해 각종 대회마다 동분서주하며 노익장을 과시하는 그의 모습에 젊은 지도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평생을 체육에 헌신한 지난 시절에 한 점 후회가 없다는 이성실 부회장은 “비록 현직에서는 물러났지만 건강과 여력이 되는 한 후배들을 위해 후견인 역할을 다하겠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바이애슬론 선수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글│김태연 기자 tyon@kgnews.co.kr

사진│노경신 기자 mono316@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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