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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문화 척도로서의 성숙한 교양시민

 

지난 7월 방학을 맞아 두 주일 프랑스에 다녀왔다. 출장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몇 년 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도 아래 서울시가 ‘디자인 도시’ 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할 때, 성동구청에서 ‘인문학과 공공디자인’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담당 공무원들이 보여준 관심에 힘입어 주 전공은 아니지만 얇은 책 한권 분량의 원고를 썼는데, 자료 사진이 없어 직접 찍으려고 나선 여행이었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는 서유럽의 오래된 도시답게 변화가 없었다. 사실 지금과 같은 근대도시 파리는 일찍이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폴레옹 3세로부터 전권 위임을 받은 파리 시장 오스만 남작은 1850년대부터 낡은 도시 파리의 개조 작업을 시작한다. 개선문과 샹젤리제, 파리를 가로지르는 대로들, 공원과 문화시설 등등, 우리가 아는 파리의 3분의 2 가량이 오스만의 주도 아래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프렝탕과 갤러리 라파이에트 백화점이 위치한 오스만 대로에 자랑스럽게 남아 있다.

물론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선이 있다. 도시의 하층민들을 파리교외로 몰아내고 부르주아 자산계급의 도시로 만들었다는 계급론적 지적이 그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근대 이전 중세도시 파리는 왕궁 주변의 상가와 빈민들의 슬럼가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오스만은 그런 도시를 자유 시민들이 걷고 보고 즐길 수 있는 근대도시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대역사를 위한 자본 유치의 필요성 때문에 상가 및 부유층 주거지의 확보 등 부르주아의 이권을 보장하는 방식의 개발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결과 파리는 근대도시의 모델로서, 지금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매력적인 도시가 되었다. 걷기에 쾌적한 거리들과 함께, 곳곳의 공원과 문화예술 건축물들, 그 사이사이의 개성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는 살아 있는 도시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개발과정에서 교외로 밀려난 빈곤층의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아픔 덕분에 파리의 매혹 역시 존재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게 도덕으로만 잴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그런데 길과 건축물 같은 하드웨어를 고친다고 해서 그게 곧 매력적인 도시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는 사람이 사는 곳이며, 그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오스만이 파리 개조작업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되어 나폴레옹 3세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이라는 정치적 도박에 나섰다가 무참히 패한다. 황제는 쫓겨나고, 그 여파로 개발에서 소외된 파리의 빈민들은 코뮌을 결성하여 세계사 최초의 노동자 도시를 선언한다. 하지만 이 코뮌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자산계급과 프러시아 군대 연합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한다. 당시 죽어간 무명용사들의 시체는 동쪽 페르-라쉐즈 묘지에 묻혔고, 지금도 위령탑 아래 그들에 대한 애도가 진행 중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파리 시민들은 커다란 교훈을 얻는다. 자본의 논리만으로는 행복한 삶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계급 사이의 적대감을 없애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 파리라는 도시 공간에서의 공존을 추구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 정신이 파리라는 물질적 실체를 통해 구현된 것이다. 이는 파리시민의 자부심이자 프랑스인의 자부심이 되었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에서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인들의 물결이었다. 백화점은 그들의 차지였고, 명품 매장의 세일즈맨은 예외 없이 중국인들이었다. 문제는 어딜 가나 시끄럽고 행동거지가 거칠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사는 물건은 서유럽의 명품이었지만, 매너는 딱 중국이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중국 정부는 앞으로 해외여행을 나서는 국민들에게 현지 문화를 존중하고 매너를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받기로 했단다. 단체로 국가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일을 방지하고자 한 조치다.

중국의 국력은 미국과 겨룰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이 하드웨어를 이끌고 매력적인 국가와 도시를 만들 성숙한 교양시민은 아직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파리 시민과 중국 여행객들은 우리에게 어떤 길을 따를 것인지 선택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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