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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낭랑 18세의 투표권

 

헌법재판소가 현행 19세 이상 선거권 부여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6대3. 혹시나 했던 낭랑 18세 투표권은 당분간 일단 물 건너갔다. 3명이나 소수의견을 냈으니 뒤집어질 날 멀지 않았다고 봐야 하나?

우리나라 18세가 겉으론 성숙해 보여도,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엔 미숙하다는 판단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19금 영화는 볼 나이, 즉 민법상 성인인 19세는 돼야 선거의 권리를 행사할 만하다는 견해를 수긍하기도 역시 쉽지 않다. 1년 사이에 정치적 식견이 부쩍 큰다? 글쎄…. 오히려 요즘 애들 성숙도를 감안해서 19금을 18금으로 고쳐야 맞지 않나?

정치적 판단이 서투른 건 스물이 돼도, 스물다섯이 돼도, 심지어 마흔이 된다고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 육십이 넘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19세 선거권은 민법상 성년이라는 형식적 기준에 맞춘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청소년은 만 17세 생일이 지나면 통지서를 하나 받는다.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으라는 통보다. 성인도 아닌데 왜 이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발급하지? 몸이 이제는 국가가 관리를 해도 될 만큼 다 컸다는 인증이다.

민법상 여자는 부모의 동의를 얻으면 16세부터 혼인을 할 수 있다. 가임능력이 있으니까. 애도 낳을 수 있고, 몸은 다 컸는데, 정치적으로는 독자적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딱한 불일치다.

몸은 성년, 판단은 미성년?

이번에 소수의견을 낸 헌법재판관들이 지적했듯이 병역법은 만 18세 이상이면 군에 자원입대할 수 있다. (우습게도 해병대 자체 판단으로 그만하면 너끈히 귀신 잡을 수 있다며 받아들인 18세 ‘군인아저씨’는 19금 영화를 보지 못한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군에 가서 국민의 의무는 다할 수 있을지언정,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선거권은 못 갖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민주주의의 역사는 참정권 확대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민회 참여 자격은 20세 이상 자유인 남성으로 한정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서구 민주주의의 모범국가처럼 여겨지는 영국에서도 선거권은 더디게 확장되었다. 일정 정도의 재산을 가진 중년의 가장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던 기간이 짧지 않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재산도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발상이 생각만큼 무지막지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공공의 문제에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공직자가 되거나 그런 공직자를 선출할 식견을 가지려면 어떤 의미에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정권 확대를 오랫동안 가로막은 것은 바로 이 같은 관점이다. 근대 대의민주주의 대표 이론가인 존 로크만 해도 정치적 식견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더 많은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믿었다. 정치적 식견과 경험에 따라 차등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주자

그러나 보통선거가 보편화된 현대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이런 발상은 용납될 수 없다. 정치학 박사라고 해서 갓 성년이 된 여성 유권자보다 더 나은 정치적 판단을 내린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그냥 일정 연령이 되면 자동적으로 평등한 한 표를 부여하는 수밖에 없다. 일정 연령을 결정하는 건 역사적 문화적 관습일 뿐이다.

정치적 관심이 꼭 연령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뉴스를 열심히 읽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먹고 살기 바빠 세상사에 눈 돌릴 틈 없는 부모보다 나은 판단을 하는 게 당연하다. 정치와 사회에 관심 많은 18세가 얼빵한 49세보다도 훨씬 나을지 모른다.

아이도 낳을 수 있고, 군대도 갈 수 있고, 국민으로서 의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구성원에게 자신들의 공적인 일을 결정할 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자신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정치 영역에서 이들을 원천 배제하는 일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세계 160여개국이 선거권 연령을 낭랑 18세로 낮춘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17세로 더 낮춘 나라들도 있다. 성숙한 정치적 판단은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관련 정보와 안목을 얼마나 길러주느냐에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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