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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주거 생태계를 복원하자

 

미국의 카이바브 고원에서는 1907년부터 사슴을 보호할 목적으로 인간이 퓨마와 늑대를 포살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사슴의 개체수가 급속히 증가하였지만 사슴의 먹이인 풀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1918년쯤부터는 고원이 황폐화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24년에는 그 이듬해 봄까지 무려 절반 이상의 사슴이 굶어죽는 사태가 이어졌다. 이는 사슴과 사슴을 잡아먹는 퓨마, 늑대가 공존하며 유지되던 생태계의 평형이 깨졌을 때 사슴들에게 벌어진 참상을 잘 보여준다. 한 종의 멸종은 다른 종의 개체수를 변화시켜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1970~1980년대 우리가 사는 주변은 역동적이고 인간미가 넘쳐났다. 그곳에는 놀이터의 아이들, 골목길을 지나며 만나는 이웃들 그리고 시장 사람들이 있었고, 기후나 토양 등 생태학적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생태계란 특정 동식물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순환 시스템으로서 생태계의 적합성이 있어야만 그 속의 생물들이 번성할 수 있다.

주거 생태계도 특정의 주거공간이 생성, 발전, 퇴출에 있어서 원활히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주거생태계에서는 시스템이 교란되어 온갖 돌연변이가 출현하고 거주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온갖 처방을 내놓아도 복원되지 않아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더 높은 곳이 등장하는가 하면, 가격이 떨어져도 거래절벽이 나타나고, 경매물건이 쌓이면서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을 합친 것보다 경락금액이 낮아지면서 깡통주택이 수두룩하게 나오고 있다.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가 속출하고 있다. 과거엔 수급불균형이 지속된 상황에서 공급부족이 원인이 되어 전세난이 일어났다면, 지금은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가운데 전세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이는 길게 본다면 주거자 중심의 환경개선이 아니라 주거환경 개선에 집착한 정책이 주거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온 결과이다.

1960~1970년대는 고도성장과 도시화 과정에서 판자촌이 도시 노동자에게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그 후 현지개량 방식으로 판자촌의 양성화 조치를 병행하면서 점유의 안정성이 확보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가옥주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토지의 불하 및 건설업체가 조합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합동’으로 재개발하는 방식을 도입하면서 저소득층인 세입자는 권리에서 배제되고 거주지를 떠나야만 했다. 이들은 다세대와 다가구가 밀집해 있는 저렴한 주택가로 이전하였지만 이곳 역시 재개발을 하면서 다시 외곽으로 이사하거나 빚을 내서라도 개발된 지역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도시빈민들의 자가 소유 비율은 1970년대 50~60%에서 1980년대 후반에는 30%로 크게 떨어졌다. 집 없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진 것이다. 88올림픽이 끝난 다음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부자와 집 없는 가난한 사람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저소득층을 위한 저렴한 주택을 철거만 하고 재생산해내지 않으면서 저소득층과 서민들이 들어갈 공간이 줄어들었다. 사업성 위주의 민간사업이 중대형 아파트 중심으로 시행되면서 저렴한 주택의 재고량은 감소하고, 골목길이며 동네 시장이 사라졌다. 저소득층과 많은 서민들은 주거비 부담으로 살던 곳을 떠나거나 빚을 내서라도 전세금을 올려주며 살고 있다. 주거환경은 개선되었으나 가계의 빚은 늘어간다.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단기 처방으로 여당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의 무력화, 취득세 영구 인하 등을 빅딜 카드로 내세우는 듯하고, 야당은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의 자동갱신 청구권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 같다. 여러 후유증이 예상되지만 급한 마당에 달리 내세울 방안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단기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참에 주거 생태계가 교란된 원인을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다시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장기적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과거 도시개발로 철거했던 서민용 소형주택을 도시 곳곳에 공급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민간사업자는 사업성 때문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므로, 우선 공공부문 위주의 공급이 시급하다. 이것이 오르는 전세값도 잡고, 떠났던 사람들도 돌아와 더불어 사는 과거의 주거 생태계를 복원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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