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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택동 한국서예박물관 관장

 

붓글씨를 씀으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정진하는 서예는 예술의 한 분야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 기교뿐만 아니라 심신수련을 위해 서예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우리나라의 서예 인구는 어느새 1천만을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서예박물관이 딱 한 군데밖에 없다. 바로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수원박물관 내에 있는 한국서예박물관이다. 국내 유일의 서예박물관인 이곳은, 2008년 유명 서예가인 근당(槿堂) 양택동 선생의 유물 기증을 계기로 개관됐다. 이에 한국서예박물관 양택동(64) 관장을 만나 서예박물관이 개관된 계기와 향후 목표를 들어봤다.

한국서예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최초로 건립한 서예박물관으로, 2003년 양택동 관장으로부터 기증받은 5천여점의 유물을 계기로 건립이 추진됐다. 2008년 10월 개관 이후, ‘대한민국 서예작가 초대전’ ‘대한민국 한글 서예대표작가전’ ‘수원·화성·오산 서예문인화가 초대전’ 등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정조의 사상과 뜻을 기리기 위한 전시 ‘정조의 시와 필묵의 동행’을 선보이며 수원의 위상을 높이고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전통문화를 소개했다.

이렇게 다양한 전시로 우리나라의 서예를 알리는 박물관이지만, 처음 박물관의 개관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지자체는 서예박물관을 건립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 관장은 “1천만명이 넘는 서예 인구를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나라에 서예박물관 하나 없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박물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에 양 관장은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모은 작품과 유물 수천점을 수원시에 기증했다. 결국 수원시는 기증된 유물을 계기로 서예박물관 건립을 추진했고, 박물관은 수원박물관과 함께 개관됐다.

처음에는 박물관의 이름을 가지고도 말들이 많았다. 한편에서는 수원의 위상을 생각해서인지 ‘수원서예박물관’으로 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양 관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박물관으로 알리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한국서예박물관’의 이름을 고집했다.

“서예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작품이나 유물은 한 군데에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이런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그 생각이 이 박물관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한의학자 집안이었다. 조부도, 아버지도 모두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고 어릴 때부터 글씨를 잘 쓰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 글씨 쓰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직업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여성 환자들을 진단하는 것을 보며 거부감을 느끼고는 서예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서예를 택한 대가로 부모와 약 10년 동안 연을 끊기도 했을 만큼 부모님은 조부 때부터 이어져 온 한의학을 포기하고 서예를 택한 양 관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예를 한 지 어느덧 50여년. 그동안 그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기념서예전’ ‘브라질국제서예대전’ ‘독일국제한글서예대전’ 등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이외에도 3·1운동 기념비, 봉녕사 묘엄스님 시비, 백련사 성탄스님 비석, 수원화성박물관 현판 등 다양한 글을 써왔다. 또 그는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은 성빈센트병원 직원들의 부탁으로 삭막한 병원 분위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글을 써주기도 했다.

‘근당’이라는 호로 많이 알려져 있는 양택동 관장. 하지만 그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근당’보다 ‘삼무재’라는 호를 더 좋아한다. 서체가 따로 없고, 글 쓰는 법이 따로 없으며, 가르침을 준 선생이 따로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 호는 ‘삼무재’다.

붓을 통해 자신을 최대한 멋있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서예의 매력이라는 양 관장은, “서예는 자기 내면의 세계를 무한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서예의 장점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예를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에서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한국에서 하는 서예비엔날레에 20여 개의 나라가 참여할 만큼 서예의 관심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는 서예가들이 외국으로 나가 서예를 많이 퍼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브라질에서는 국제서예대회를 열 만큼 서예에 대한 관심이 크다. 더욱이 1천만이 넘는 서예가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서예를 하기 위해 유학하는 사람이 200명이나 될 정도다.

양 관장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서예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우리나라 서예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에 한국서예박물관은 서예사적 자료에 관심을 갖고 유물을 모았으며 영조, 정조, 추사 김정희 등 역사적으로 이름난 인물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근현대적 서예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그러나 양 관장은 많은 전시를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작품들은 절대 전시하지 않는다. 전시 공간도 좁은데다 관장의 작품을 전시하면 혹여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얘기를 듣게 될까 저어되기도 해서지만,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서예가들의 전시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아서다.

이런 그에게 박물관의 분리·독립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서예박물관은 수원박물관, 사운이종학사료관 등과 함께 건물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 전시실과 인력의 부족, 박물관은 이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사업을 하나 구상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작은 탓이다. 박물관의 소장 유물은 약 3만점. 하지만 현재 전시되는 작품은 겨우 150여점에 불과하다. 더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은 양택동 관장이기에, 그의 목표이자 바람은 한국서예박물관의 분리·독립이다.

“현재 박물관의 전시된 것은 소장 유물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작품들입니다. 더 많은 작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하루빨리 박물관이 분리·독립되어야 합니다. 한국 최초의, 한국 유일의 서예박물관인 만큼 중앙부처에서도 이를 위해 협조를 할 수 있게끔 앞으로 계속 노력할 것입니다.”

글|백미혜 기자 qoralgp96@kgnews.co.kr

사진|오승현 기자 osh@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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