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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대한민국.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국가에서, 이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학업 스트레스, 경제적 어려움 등 이유를 들어 스스로 고귀한 목숨을 끊는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예방센터를 만들어 상담과 다양한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하고 자살률을 낮추는 데 힘쓰고 있다. 국립공주병원 이영문(51) 원장도 자살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이 중 한명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세계자살예방의날(9월10일)을 앞두고 수원자살예방센터에서 그를 만나 우리나라 자살률의 증가 원인과 그에 따른 대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재는 국립공주병원장을 맡고 있지만, 이 원장은 안산시정신보건센터장(1997~2001),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부교수(2001~2007), 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2004~2010), 경기도광역정신보건센터장(2008~2012), 경기도광역자살예방센터장(2010~2012) 등을 역임한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가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의 자살을 심각하게 보고 있지만 실상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률은 OECD 국가들과 비교해 중하위권이라고 한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노인들의 자살이다.

물론, 40·50대 남성자살률도 높다. 가장이라는 부담감에 경제적인 이유도 이유지만, 급속하게 변화하는 IT세대와 참고 지내는 것을 미덕으로 한 옛 세대들 사이에 끼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자살률은 우리나라의 자살 가운데 35~40%를 차지할 만큼 심각하다.

오늘날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감소함에 따라 젊은층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전 세계는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노인의 자살률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은 보통 우울증으로 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노인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미비하고 사회복지 인프라가 제대로 안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컴퓨터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살 사이트, 유명인 자살 등 자살에 영향을 주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자살 사이트는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들끼리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자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이 원장은 이에 대해 “유해 사이트들을 막는 것은 당연하지만 유해 사이트 차단만으로는 자살을 예방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 그는 이어 ‘베르테르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이나 자신의 롤모델이 자살할 경우 그를 모방해 자살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원장은 이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을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 말한다. 유명인의 자살이 인간의 자살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례로 그는 여배우 故최진실과 故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는다. 최진실의 자살은 자살률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끼쳤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이 원장은 “가십적으로 일어나는 유명인의 자살은 더더욱 베르테르 효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7월,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한강에서 투신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그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퍼포먼스다’, ‘자살이다’라는 말들이 많았다. 이영문 원장은 이 사건을 자살 시도라고 여긴다. 안전망을 완전히 구축하고 해야 퍼포먼스지 그것이 아니기에 자살이라는 것이다.

“자살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정부와 언론은 자살자를 양성하는 쪽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누군가가 단식농성을 한다면 국가는 그 문제와는 별개로 생명에 대해 위험성을 감지하고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 자살자의 유족 등에게 별다른 지원이 없는 실정이다.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인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살에 대한 인식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살이 ‘슬픈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쁜 것’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은 자살자를 집안의 수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에 지원을 해주려고 해도 거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로 인해 자살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과거 핀란드는 한 해에 약 2천명의 자살자가 나타나는, 자살률이 높은 나라였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정부는 심리적 부검(자살자가 자살을 한 원인을 조사하는 것)을 실시했다. 그렇게 한 해에 발생한 자살자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분석해 수년간 자료를 모은 결과, 현재 그들이 자살하는 인구는 한 해에 17명 정도로 현격히 줄었다. 이는, 자살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자살을 수치로 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여러 지역에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참여가 쉽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이영문 원장은 사람들이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깨트림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심리적 부검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원장은 자살예방의 성과는 단기간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정부가 실적만을 위해 내세우는 대책이 아닌, 자살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을 배울 수 있어도 ‘가치’를 배우기가 힘든 사회, ‘왜 살아가는가?’라는 생각을 할 틈을 안 주는 사회. 이런 각박한 사회에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희망이라고 여긴다.

“저는 오랜 기간 동안 ‘정신건강’을 가지고 일해왔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노력할 것이며, 정신질환 환자들이 지역사회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글|백미혜 기자 qoralgp96@kgnews.co.kr

사진|오승현 기자 osh@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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