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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 동행동행(同行同幸)

 

‘홀로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고 ‘내 탓’보다는 ‘네 탓’이 넘쳐나는 시절일수록 더 많이 생각나는 말이다. 우리사회는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일을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게 우리다.

작년 한해 우리사회는 참 많은 갈등이라는 번뇌에 시달리며 지내왔다. 그래서인지 기업과 단체, 기관 등이 발표한 올해 사자성어에는 유독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소망을 담은 것들이 많다. 광이불요(光而不耀:자신의 광채를 줄이고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집사광익(集思廣益: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 화동세중(和同世中:화합하여 세상의 중심으로 나아간다),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등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동행동행(同行同幸: 함께 가면 함께 행복하다), 동심동덕(同心同德: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힘쓰고 노력한다)’과 같은 조합된 사자성어도 등장했다.

우리 사회엔 새삼 거론치 않아도 소외되고 관심 받지 못하는 약자가 매우 많다. 세대 간, 계층 간, 성별 간 곳곳에 분포돼 있어서 갈등의 골도 매우 깊다. 이런 가운데서 자신의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즉 책임을 전가하는 부정적 사고의 기류도 만연해 있다. 이념적으로 편이 갈리고 불신과 대결구도가 형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탓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곳이 정치권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켜야 하는 ‘정치’가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과 권력을 얻거나 늘리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교섭하고 정략적으로 활동하는 ‘정치’로 변질된 채 하염없이 표류하고 있어서다. 어디 정치권뿐만인가. 대립 관계에 있는 모든 단체가 그렇고,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이란 비뚤어진 의식도 고착화되어 버렸다. 남에 대한 배려와 나눔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나친 경쟁구조가 사회구조 전반의 가치관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그 후유증은 너무나도 크다. 그런데도 상대방의 작은 잘못은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면서 자신의 큰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용서한다.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보이고, 자기 눈에 박힌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성경구절을 굳이 인용치 않아도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남을 꺾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약자는 배제되고 힘이 센 쪽만 행복을 독차지해서도 안 된다. 약자는 배제되고 힘이 센 쪽만 행복하면 결국 공룡의 최후처럼 강자나 약자 모두 공멸할 수 있어서 그렇다. 공멸을 막으려면 강자와 약자가 손잡고 동행해야 가능하다.

이럴 때일수록 화합과 동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합과 동행이 이루어지려면 배려 속에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갈등도 이런 마음속에서는 용해될 수밖에 없다. 핍박하고 저주하는 말과 행동보다 사랑하고 축복하는 말과 행동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세상이 혼탁하다보니 내가 먼저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선 우리는 새롭게 가야 한다. 먼저 그늘진 사회,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하며 아집이 동반된 욕심이 더 이상 공정과 평등을 깨뜨리게해서도 안 된다. 물론 상대방과 경쟁하면서 각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면, 대립과 반목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다. 모두 ‘내 탓’이라는 배려의 마음으로 타인에 대한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와 함께 가는 길에 나의 동행인이 진정으로 행복한가를 다시 한 번 배려하고 살피며 살아가는 올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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