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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 폭탄이 터지기 전 뇌관을 제거해야

 

3년 전인가. 후배의 연락을 받고 개업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수원에서 목이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영통지역 중심가에 커피숍을 겸한 빵집을 차렸다고 해서다. 그날 후배 얼굴을 잠시 본 후 열흘 뒤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모 은행지점 중견간부였던 그가 자영업을 하는 것이 궁금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것도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생 브랜드를 택해서였다. 후배의 대답은 간단했다. 조직 내에서 자꾸 밀리는 위상을 명퇴로 보상받고 노후를 준비하는 첫 단계로 시작했으며, 신생 브랜드를 선택한 것은 기존 업체보다 매우 좋은 조건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꽤나 많은 자금을 투자했지만 돈값을 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보였다.

그동안 모임에도 나오지 않아 ‘바쁜가보다’ 했던 후배를 얼마 전에 만났다. ‘잘 되냐’는 나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넘긴 지 좀 됐다’고 했다. 폐업을 안 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며 엄청 손해를 봤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하소연도 했다. 결정부터 성급했다는 게 그의 서두였다. 나만 열심히 하면 최소한 월급은 가져가겠지. 그래서 임대료도 높고 권리금도 비쌌지만 상관하지 않았고, 주변에서 열이면 열 다 말렸지만 들은 체도 안 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데, 난 다를 거야’라는 자만과 창업컨설팅 직원의 ‘비전 있다’는 달콤한 말도 한몫 했다고도 했다. 내심 장사가 잘된다는 가정 하에 미래를 설계하기도 했는데 완전 ‘오산’이었다는 것이다.

가게 문을 연 지 서너 달이 지나면서부터 하루도 흑자를 낸 적이 없고 1년 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근에 유명업체가 경쟁사 ‘잡아먹기식’ 새로운 빵집을 개업했다고 한다. 매출은 급감하면서 빚으로 꾸려가는 나날이 늘어가던 중 임대료 인상이라는 ‘결정타’를 맞았다고 했다. 건물주는 2년 계약이 끝나자 20% 넘게 월세를 올렸다는 것이다. 사정도 해보고 호기도 부려 봤지만, 세입자가 못 견디고 나가면 다른 사람에게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는 건물주의 계산은 요지부동이었고, 결국 6개월을 더 버티지 못하고 털어 넣은 퇴직금을 포기한 채 두 손을 들었다고 했다. 임대료 인상 때 건물주가 “퇴직금 들고 장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 말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고 했다. 후배는 그래도 위안은 있다고 했다. 주변엔 나 같은 사람 천지라며 겸연쩍게 웃었는데 그 모습이 몹시 서글퍼 보였다.

현재 전체 자영업자 중 50대가 약 30%(200만명)로 가장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이후 크게 늘어나던 자영업자 창업은 지난해 계속 줄었지만, 50대 창업만은 되레 매달 3만 명씩 늘었다고 한다. 직장에서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대거 창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1963년생으로 베이비부머인 후배처럼 이중 절반가량이 충분한 준비 없이 음식점, 제과점, 치킨집 등 골목 상권에서 경쟁이 치열한 음식서비스 업종에 뛰어들었다가 가게를 접기 일쑤다. 두명 중 한명 꼴이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자영업자가 장사를 접는다. 한해 평균 60만개의 업소가 문을 열지만 58만개가 다시 닫는다. 하루 평균 1천600개꼴이다. 해서 앞으로의 자영업 시장은 예측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전쟁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양산해낼 것이고, 적어도 한해 평균 수만명, 가족까지 포함하면 수십만명이 전쟁에서 패해 저소득층으로 전락할 것이다.

지금도 자영업들은 부도를 내거나 폐업하며 퇴직금은 물론 대출금마저 날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잠재적 위기에 접어든 창업자들까지 합하면 그 규모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은행은 이런 위기의 자영업자들을 ‘폭탄’으로 정의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빚 450조원 중 60조원은 부실 위험이 있다고 보면서 빌린 돈 못 갚는 그들 때문에 나라가 큰일 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당사자들만의 고민과 고통이 아닌 것 같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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