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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나의 음악 선배이자 선생님”

 

첫번째 트럼본 앨범 발표한 정중화

육종암 투병 3개월 만에 별세한

아버지에게 바치는 사부곡 담아

“나도 음악한지 20년 넘었지만

아버지의 열정·정신 못 따라가 ”

재즈 뮤지션인 정중화(43) 서울종합예술학교 기악과 교수에게 “아버지는 음악 선배이자 선생님”이었다. 아버지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가르쳐 준 건 아니지만, 몸소 들려주는 연주를 체득하며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10월 육종암 투병 3개월 만에 별세한 한국 재즈 1세대 뮤지션 정성조 전 KBS관현악단장이다.

정 교수가 아버지를 향한 사부곡(思父曲)을 담은 첫 번째 트럼본 연주 앨범 ‘오텀 레인’(Autumn Rain)을 발표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인터뷰한 그는 “트럼본 앨범은 처음 내는 것이어서 돌아가시기 전에 발표해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됐다”며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고는 우리는 물론 당신도 몰랐을 것이다. 유언도 없으셨다. 혼수상태가 아니셨는데 내 손을 잡고 눈만 바라보셨다”고 부친을 향한 짙은 그리움을 나타냈다.

앨범에는 “지금 많이 편찮으신 제 아버지께 이 앨범을 드립니다”란 글귀가 또렷하다.

“아버지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재즈클럽 ‘올댓재즈’에서 ‘정성조 퀸텟’으로 매주 한 무대에 섰는데, 이번 앨범의 두 곡 정도는 함께 연주한 적이 있어요. 또 몇 곡은 미리 들려 드렸더니 ‘정말 괜찮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나 지난 7월 아버지의 투병 소식을 알고는 5분 만에 써내려간 헌정곡 ‘파더’(Father)는 끝내 들려 드리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가 이태원에서 함께 공연한 뒤 귀가하는 차 안에서 ‘할 말이 있다. 내가 암에 걸렸다. 말기라 한다’고 고백하셨다”고 말했다.

‘파더’는 청명한 피아노 연주가 곡을 이끌면 묵직하고 부드러운 트럼본 연주가 흐름을 이어간다. 곡에는 결코 애절하거나 눈물을 쥐어짜는 슬픔이 깃들어 있지 않다. 부자 관계가 무척 다정했다고 느껴지는 따뜻하고 밝은 곡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곡입니다. 아버지는 음악에 앞서 ‘약속 시간에 늦지 말라’고 늘 인성을 강조하셨죠.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시벨리우스 음악 프로그램을 들으며 편곡을 공부하셨어요. 그런 걸 보고 자랐으니 자연스레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었죠.”

그는 “나도 음악 한지 20년이 넘었지만 아버지의 열정과 정신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며 “투병 전까지 경희대 음대 박사 과정에 다녔고 비밥 재즈 연구에 몰두하셨다. 병실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계셨다”고 말했다.

21살 때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한 그가 트럼본을 잡은 건 35살이었다. 미국 뉴욕 퀸스칼리지 작·편곡 석사 시절 트럼본을 연주하는 후배를 만나며 늦깎이로 악기를 접했다. 작·편곡을 비롯해 색소폰, 클라리넷,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에 능한 아버지처럼 그 역시 여러 분야를 아울렀다.

“아버지가 베이스만 쳐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하셨어요. 음악 전체를 알아야 한다셔서 대학원에서 작·편곡을 공부했죠. 그러다 보니 브라스(금관악기)를 배워야겠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가 한집안에 색소폰이 둘일 필요는 없다고 하셨죠. 트럼본은 콘트라베이스처럼 낮은 음자리표 악보를 보는 공통점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배울 수 있었어요.”

그 덕에 내게 된 앨범에는 자작곡 9곡이 수록됐다. 타이틀곡 ‘오텀 레인’은 인트로부터 귀를 잡아끄는 트럼본의 낮고 서정적인 선율이 흘러나온다. ‘서머 브리즈’(Summer Breeze)는 조지 거쉰의 ‘러브 웍트 인’(Love Walked In)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보사노바 풍의 편곡은 아버지가 ‘팁’을 줬다. 피아노와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미싱’(Missing), 영문과를 나온 아내가 곡 제목을 붙여준 ‘노스탤지어’(Nostalgia)는 멜로디를 타는 소리의 볼륨감이 돋보인다.

그는 “앞으로도 트럼본 연주 앨범을 꾸준히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곡을 써서 연주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무척 매력적이에요. 재즈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 만큼 대중적으로 소통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 할 겁니다.”

또 아버지가 올해 서울종합예술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학부장에 취임하며 기악과 제자들과 만든 ‘SAC빅밴드’를 제대로 꾸려나갈 계획이다. 서울대 음대 출신 아버지는 이후 버클리음대를 졸업하고 아들이 다니던 퀸스칼리지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나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지난해 1월 귀국해 이 학교에 재직했다.

가장 아쉬운 건 이제는 아버지와 한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의 첫 무대가 또렷하고 생생하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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