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
/톈허
농부는 밥이 수북이 담긴 질그릇을
양손에 받쳐 들고 있다
생명은 한 그릇의 쌀밥과 함께
이어져 왔다
질그릇에 쌀밥이 담기지 않으면
밥을 먹는 사람은
이제 영원히 밥을 먹지 못한다
질그릇이 엎어지면
그것은 농부의
무덤으로 변해 버린다
- 톈허 시집 『바람이 불었다』, 한국문연
밥과 노동의 관계란 생명체의 거부할 수 없는 화두이다. 노동은 힘들고 밥은 맛있다. 노동은 피하고 싶고 밥은 먹고 싶다. 이것은 딜레마다. 우리는 매순간 머리를 굴린다. 조금 덜 노동하고 조금 더 맛있는 밥을 얻기 위해 골몰한다. 하고 싶은 일보다 밥그릇이 큰 곳을 기웃거린다. 밥그릇은 의외로 단순하다. 밥그릇은 엎는 순간 자신의 무덤이 된다. 이 사실은 무섭고 두렵다. 농부가 양손에 받쳐 들고 있는 질그릇은 윤기 없이 소박하다. 한 끼의 밥이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