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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기억이 나를 본다 - 캐빈에 대하여

기억이 나를 본다 - 캐빈에 대하여

                                                   /박홍점


귀와 눈을 새로 사 줄게

씻어 놓은 흰개미 알들 엎지르듯 쏟아 부은 말들을

주워 담을게

제발 잊어 줄래?

너를 화장실 안에서 때린 거

보행기 안의 너를 샌드백 삼아 후려친 거

우는 너를 건축 공사장 소음 속으로 밀어 넣은 거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저절로 간절했던 기도를 까마득히 잊었으면 좋겠어

머리칼과 눈썹을 새로 달아 줄게

뇌수를 새로 부어 줄게

아가야,

뜨겁게 하루를 달구었던 태양이 물에 몸 담그는 시간

네 머리맡에서

톰 소여의 모험, 걸리버 여행기의 첫 장을 지금 펼쳤어

이리 와 누우렴, 아가야

붉은 얼룩의 기억을 지우고 또 지울게

- 박홍점 시집 <피스타치오의 표정>/시작

 


 

엄마이기 전에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기에 타인의 피 흘리는 고통보다 자기 손톱 밑의 고통이 훨씬 아프다. 이 여자는 어쩌다 배안에 열달 내내 품었던 아이를 때리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원하는 임신이었다면 출생한 아기는 축복이겠지만 시 속의 아이는 어쩌면 원하지 않은 출생이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화장실 안에서 후려치고 보행기 안에서 샌드백’처럼 주먹을 휘두르는 엄마를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모성이란 문명 이후의 발명이라 하지만 아이의 폭행은 인간과 동물을 판가름하는 기준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엄마가 뒤늦게라도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패악질을 아이의 기억이 본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다른 이야기로 아이의 기억을 덮으려 해도 한번 입은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성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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