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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나라 지킨 희생도 잊지 않아야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65년이다. ‘잊지말자 6·25, 쳐부수자 공산당!’ 유신 정권 시절 학교마다 걸려있던 현수막의 문구다. 교련복을 입고 격전지 순례 행군을 마친 뒤 수원공설운동장에 수원시내 전체 고교생이 모였다. 지금은 수원시내 고교생이 한 군데 모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문계 실업계를 통틀어 8개 학교뿐이었으니 전체를 합쳐봐야 1만명도 채 안 됐다. 스탠드와 운동장을 가득 메운 남녀 학생들은 군인과 똑같이 도지사와 교육감에 대해 열병과 분열을 한다. 곧바로 반공 궐기대회를 시작한다. 마침 두 달 전쯤인 1975년 4월30일은 월남이 패망했던 날인지라 국가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던 때다. 이른바 ‘관제데모’가 툭하면 있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학교수업보다 교련시범이 더 많았던 때다.

지금 생각하면 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남학생은 목총을 들고, 여학생은 구급낭을 메고 땡볕에 온갖 먼지를 뒤집어쓰며 전쟁연습(?)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60세도 채 안 된 나이에 벌써 옛날 이야기를 하니 남세스런 일이다. 영화 ‘말죽거리의 잔혹사’ 시대의 이야기다. 국가안보가 정권유지의 한 수단이었던 시절이었지만 그나마 ‘관제데모’와 ‘전쟁연습’이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또 시대적인 아픔을 상기하는 기회가 됐다면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는 뭐든지 쉽게 잊어버린다. 인간에게 망각의 기능이 있기에 슬픔과 분노의 기억을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에게 베푼 것은 잊는 게 좋지만 도움받은 것을 잊는다면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6·25 참전용사가 그들이다. 한국전쟁 65년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너무 잊고 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나 역시 반성해야 함은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20대 남녀의 절반이 ‘6·25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 모르고 있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한 때 육군사관생도 중 상당 수가 대한민국의 주적이 미국이라고 대답했다는 사실에서 6·25 전쟁도 그냥 지나간 역사로 인식하고 있을 법하다.

그러나 참전용사들은 가족과 고향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름모를 고지에 영혼을 묻었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며 어머니, 아버지들은 절규했다. 그들이 나라와 민족을 끈을 잇기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던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는다는 건 은혜를 저버리는 거나 다름없다. 우리 정부가 이들에게 주는 혜택도 월 18만원의 수당과 병원비 60% 할인이 전부다. 민주화운동유공자나 천안함, 연평해전 용사들에 비교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킨 분들에 대한 예우가 이쯤된다면 창피할 정도다. 정부가 해마다 수 십조의 복지예산을 쏟아붓지만 나라를 지켜준 이들에게는 고작 몇 백억원이다. 정부나 국민 모두 낯부끄런 일을 하고 있다.

6·25 참전유공자는 현재 15만 2천500여 명이 생존해 있다. 한해 1만~1만3천명이 작고한다. 95%가 80세 후반에서 90세 이상이다. 앞으로 10년이면 6·25 참전용사들은 거의 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여생이 너무 짧다. 우리를 도왔던 전투지원 16개국과 의료지원 5개국 등 모두 21개 해외참전국 용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름도 모르는 머나먼 나라에 와서 피흘리며 남의 나라를 지켜준 사람들이다. 죽기 전 한국을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세월만 보낸다.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소원도 들어줘야 한다. ‘물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되 물을 잊어 버리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되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魚得水逝 而相忘乎水 鳥乘風飛 而不知有風)’.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감사할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잊을 건 잊어야 하지만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세월호 희생자뿐이 아니다. 나라를 구한 참전용사들의 고마움은 더욱 잊어서는 안 되며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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