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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이번 여름에 국내 여행을 더 권장하는 이유

 

30년 전 군대 전역 후 복학한 4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일찌감치 이민 떠난 작은 형이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쉐인캐트린)에 살고 있었다. 한번 다녀가라는 형의 권유에 호기심으로 들떴다. 당시 해외여행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여권을 만들려면 남산 자유센터에서 하루종일 반공연맹의 소양교육을 받고 영화도 시청해야 했다. 캐나다로의 직항 편이 없어 미국 알라스카주 앵커리지를 경유했다. 15시간의 비행 끝에 뉴욕 존 에프 케네디(JFK) 국제공항에 내렸다. 난생 처음 밟아보는 미국 땅 아니, 첫 해외 땅이었다. 권총을 허리에 찬 흑인이 나를 포함한 한국여행객 몇몇을 닭장차(?)에 실었다. 우리를 인근 여관으로 안내했고, 그는 밤새 우리를 지켰다.

이튿날 우리를 닭장차에 다시 실은 그는 미국 국내선 라가디아 공항으로 안내했다. 거기서 토론토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미국 비자가 없는 우리들이 밀입국하지나 않을까 우려해서 감시했던 것이다. 미국 땅을 처음 밟은 나의 해외여행은 이렇게 어리둥절하게 시작됐다. 퀸 엘리자베스 하이웨이(QEW)를 직접 달려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만 보았던 나이아가라 폭포도 구경했다. 버스와 열차를 번갈아타며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도 혼자 다녀봤다. 알량한 짧은 영어 몇 마디만으로 혼자 다닌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외국에 왔다는 호기심이 이를 이겨냈다.

이후 신문기자가 돼서는 해외취재의 기회가 많이 생겼다. 중국과 수교 이전인 1990년 제10회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취재를 시작으로 많은 나라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여행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해외취재는 나에겐 행운이자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경험이 됐다. 이제는 해외여행이 자랑거리였던 시대는 지났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연간 1천600만 명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신혼여행지도 해외가 필수이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국제선 비행기를 다 타본 셈이다. 비용도 엄청나게 많다. 지난해 한국의 해외 관광지출액은 무려 22조7천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일본의 해외 관광지출액을 10년만에 앞질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분석에 따르면 1년동안 해외로 여행하는 사람의 10%만 국내 여행으로 발길을 돌릴 경우 연간 4조2천432억 원의 내수 창출 효과가 있다고 한다. 5만4천670명의 일자리도 더 만들 수 있다. 정부와 각급 기관, 경제단체들이 국내휴가를 권장하고 나선 이유다. 세월호와 메르스로 이어지는 극심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수를 진작시키자는 의미다.

가뜩이나 메르스 여파로 여행업계가 울상이다. 한국을 방문하려던 중국 일본 등 해외관광객의 잇따른 한국방문 취소로 국제여행수지는 갈수록 적자다. 그러나 해외여행을 떠난 내국인은 오히려 늘었다고 한다. 지난 달 25만3천여 명이 인천공항을 출국해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포인트나 증가했다. 이들 중에는 메르스를 피해 해외로 떠난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하니 씁쓸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올 여름휴가철엔 인천공항보다는 국내 관광지에 발 디딜 틈이 없었으면 좋겠다.

해외여행은 모든 이가 꿈꾸는 일이지만 국내에도 숨겨져 있는 보석같은 관광지가 많다. 해외여행도 좋은 추억을 가져다주겠지만 이번 만큼은 여행지를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요즘 그리스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인지 해외에서 외화를 펑펑 쓰는 것보다 나라 안에서 돈 쓰는 게 애국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 했다. 이번 여름에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전국 어디든 돌아보며 호연지기를 길러주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최남선이 수필 ‘국토예찬’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국토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며, 정신인데다 가장 명료하고 정확하고, 또 재미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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