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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뻔한 활판인쇄술 전통 맥 잇는 국내 유일 활판공방

 

사회적 경제기업 탐방

㈜출판도시활판공방

경기신문 연중기획

1972년 이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구텐베르크 성서’였다.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연구원이었던 우리나라 박병선 박사는 우연히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한다. 책의 마지막 장엔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라는 정확한 연대와 인쇄장소 등이 기재돼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임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유럽사람들은 동양에서 금속활자 인쇄가 시작됐단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박병선 박사의 끈질긴 연구와 자료수집 끝에 지난 2001년 9월 마침내 직지심체요절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다.

비록 현재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나 고려시대 승려 백운화상의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인쇄 역사를 바꾼 것은 분명하다. 독일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직지심체요절을 발명한 우리지만 현재 국내에선 납 활자 인쇄본을 찾아보기 어렵다.

컴퓨터 인쇄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활자인쇄를 부활시킨 국내 기업이 있다. 바로 파주 출판도시에 위치한 ㈜출판도시활판공방이다.



디지털인쇄에 밀린 납 활자인쇄 출판문화 부활
2007년 장인 3명과 함께 파주 출판도시에 ‘둥지’
2013년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홍보 등 지원받아


“계속 이어지기 위해선 어린아이들의 관심 필요”
활자체험프로그램 개발… 매달 400~500명 참여


독일 라이프치히인쇄박물관을 롤모델 삼아
내년 활판인쇄박물관 설립 위해 설계작업 중
 

 

 

 

 




◆ 활판인쇄술의 역사를 잇는 국내 단 하나뿐인 활판인쇄공방

㈜출판도시활판공방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납 활자 인쇄 공정을 하는 인쇄소 겸 출판사다.

박한수(47) 출판도시활판공방 대표는 지난 2007년 주조, 인쇄, 제본 등 3명의 장인과 함께 활판공방을 시작했다.

“유럽의 활판공방에 대한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자료를 접하게 됐고 자연스레 1995년부터 국내 활자들과 기계들을 하나씩 모으게 됐다”고 박 대표는 설립 당시를 회상했다.

박 대표는 공방 설립 전 디지털 인쇄업에 종사한 북디자인 전문가로 유럽 공방 사례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국립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활판공방이 다수였고 특히 프랑스는 세계문학전집, 사상집, 문학서적 등 주요 서적은 예약시스템을 통해 활판방식으로 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디지털 인쇄가 발전하는 만큼 활판인쇄가 외면당하면서 민간뿐 아니라 국립에서 운영하는 활판공방조차 하나 없었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만든 종주국의 자긍심으로 뭉친 활판공방은 납 활자인쇄 출판문화를 부활시키고자 파주 출판도시에 장소를 마련했다.

납으로 자모를 일일이 만드는 주조부터 약60만자가 빼곡히 들어찬 활자 선반에서 자모를 골라내는 채자, 자모를 배열하는 식자, 인쇄·접지·제본에 이르기까지 활판 인쇄 전과정이 활판공방 내에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이후 활판공방은 지난 2008년 이근배 시인의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라는 첫 시집을 발간했다.

파주시청은 활판공방의 가능성을 보고 예비사회적기업을 적극 제안했고, 2013년 11월 출판도시활판공방은 경기도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았다.

현재 박 대표를 비롯해 주조·조판·인쇄·제본 등 4명의 장인과 체험교육강사 2명, 행정직원 1명 등 총 8명이 함께 공방을 운영 중이다.

활판공방은 36권의 활판시집, 활판시노트, 훈민정음·언해본·해례본, 세종대왕 퍼즐 등의 문화상품을 제작해 국립한글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판매하고 있다.

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에서는 이러한 공방 제품들을 홍보할 수 있는 홈페이지, 브로셔 등의 제작 지원을 도왔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사회적기업제품 판매장에 공방 제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지원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활판공방은 현재 한국단편소설집, 어린이 동화시리즈 등을 제작 개발하고 있다.

 

 

 



◆ 활판인쇄 체험프로그램 10가지…국내 유일 활판인쇄박물관 준비

활자인쇄체험이 보편화된 국가는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어린아이들에게 어릴적부터 종이와 활자문화를 친숙하게 하기위해 활자문자진흥위원회를 마련했다.

개인 소유의 도판인쇄박물관에서는 재미있는 놀이와 활자를 결합해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모티브를 얻은 박 대표는 우리나라만의 활자체험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독일·프랑스·영국 등은 활판공방이 활성화된 반면 일본은 활판체험교육쪽이 발달돼있다. 활판인쇄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선 어린아이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박 대표는 체험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시인의 마음(근대인쇄) ▲목판인쇄 맛보기(고인쇄) ▲천자문 향기 ▲활판시 카드 ▲시를 그리다(시화) ▲캘리그래피 세상 ▲민화에 빠지다 ▲꿈을 찍는 활자(활판 전과정 체험) ▲나만의 명함(활판명함 제작) ▲시활판 전문가(시1편 제작) 등 프로그램 수만 10가지다.

1인당 체험가격은 3천원~3만원으로 초·중학생의 경우가 1만원내외, 일반인 고급과정이 3만원선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직접 만든 책을 가져갈 수 있기에 흥미유발은 물론 만족도도 높다.

이에 지난 201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활자체험프로그램은 현재까지 총 1만2천여명이 참여했다.

1년도 채 안돼 매달 평균 400~500명의 참가자가 활자인쇄 체험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있는 것이다.

“체험교육의 롤모델이 일본의 도판인쇄박물관이라면 활판공방은 독일의 라이프치히인쇄박물관을 롤모델로 하고 있다. 민간에서 운영하지만 박물관으로 승격돼 자리잡은 라이프치히박물관처럼 내년 중으로 우리 활판공방도 박물관 신청을 할 예정이다”라고 박 대표는 앞으로의 청사진을 설명했다.

공방이 설립된지 9년째, 이는 더이상 활판공방의 청사진만이 아니다.

지난해 파주시청과 문화재청에선 박물관 신청을 각각 지속적으로 제안해왔고 박 대표는 현재 국내 단 하나뿐인 활판인쇄박물관을 설립하기위해 설계 중이다.
 

 

 


“젊은 세대에 장인들의 기술 전수해야… 올해 근대문화재 등록 준비”

박 한 수 대표

“국내 유일 활판공방이란 자부심보다 우려가 더 크다. 장인들의 기술을 젊은 세대에 전수해야만 공방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박한수 대표는 공방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폐기처분된 국내 활판인쇄기를 구해 수리하고 장인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3년의 시간이 걸렸다. 힘들게 살려낸 활판공방이 국내 유일한 것은 후대에 활판인쇄술이 끊길 수도 있단 의미다. 현재 공방에서 활판인쇄에 임하는 40여년 경력의 장인들은 평균 70대 중반이다보니 국내 유일 공방이 현 세대에서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당연하다. 이에 활판공방은 현재 40~50대 중년층 2명에게 장인들의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금속활자 발명국의 후손으로서 활판인쇄를 살려내기위해 모인 활판공방은 활자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 디지털인쇄 방식과의 차별점은.

디지털 방식으로 인쇄된 책은 40~50년이 지나면 부스러진다. 이와 달리 활판인쇄는 전통한지 등 수명이 긴 특수 종이를 개발해 책의 수명이 길다. 거기에 독특한 장정, 그리고 고풍스런 제책과 함께 적절한 폰트의 활자가 어우러져 탄력적이고 역동적인 요철감에 의한 우둘투둘한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활판인쇄의 경우 활자가 종이에 박히기 때문에 잉크자체가 오래간다. 어린아이들은 이런 형태의 책을 접할 기회가 적다. 지난날 납 활자로 인쇄된 종이책을 읽으며 꿈을 이루고자 했던 젊은 날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 사회공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현재 우리 활판공방은 파주 출판도시를 찾아오는 개인에게 무료로 개방 중이다. 또한 출판도시 내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단체로 방문할 경우엔 교육프로그램을 20% 할인된 가격에 접할 수 있다. 다문화가정의 방문시 체험교육은 무료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국내 활판공방이 없다보니 활판인쇄술에 대해 많은 아이들이 생소해한다.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네스코 문화재를 복제해 공방내에 전시했다. 앞으로 다문화가정 뿐 아니라 다양한 소외계층에게 무료 체험 교육을 확대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내년 중으로 현재의 활판공방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박물관으로 신청 준비중이다.



- 단·장기적 목표는.

올해 안으로 사회적기업 신청과 근대식문화재 등록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파주시에서 근대문화재 신청을 제안해왔으나 당시 공방 운영이 바빠 올해로 미뤘다. 근대문화재에 등록된 후 내년 박물관으로 승격을 위해 현재 박물관 설계작업 중이다. 현재 공방 내에 들어오지 못한 기계를 추가로 들여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자료도 좀 더 보완할 계획이다.

활판공방의 박물관은 과거~근대~현대의 인쇄과정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활판인쇄 체험활동을 온 아이들이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 인쇄가 진행되는지 궁금해하더라. 전시대의 인쇄역사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계속 계승될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활판인쇄박물관이 장기적 목표다.



■ 착한 기업, 이것만은 우리가 최고

금속활자 인쇄방식 복원… 한정부수 1천권 제작

국내 유일 영구보존판 ‘활판시선집’ 36권

지난 2008년 한국 현대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다섯 시인의 시선집을 펴낸 것이 시발점.

19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근대 출판문화에 많은 기여를 한 금속활자(납활자) 인쇄방식을 복원, 활판시선집을 펴내고 있다. 30여년 전에 디지털 인쇄 등장으로 사라진 활판인쇄는 보존성이 뛰어나고 활자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주조(활자만들기)→문선(원고 활자 고르기)→조판(한 페이지씩 글자를 심어 판 제작)→인쇄 과정을 거쳐 1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두 달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1천권만 찍으면 활자가 마모돼 한정부수로 제작하므로 소장가치가 뛰어나다. 2008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평균 5권씩 제작, 총 36명 시인의 시집을 만나 볼 수 있다.

/안경환·이슬하기자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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