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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사랑은 주는 게 더 행복하다

 

두달 전 96세의 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삶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세인들의 화두가 됐던 ‘앞으로 2년을 더 일하고 98세 되는 해에 사랑하는 짝을 찾아 보겠다’는 김교수의 말을 중심으로 건강과 노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젊음은 자연의 선물이지만, 노년은 자신이 만든 예술작품이다’라고 결론지은 생각이 난다.

한국 철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 교수는 96세인 요즘도 곳곳에서 강의를 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며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왕성하게 하는 인사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엊그제 모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노철학자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 가량 인터뷰 내내 논리 정연한 어법으로 철학과 인생, 인간관계와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며 정신과 육체의 건강함에 다시 한 번 감탄 했다.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사랑 받는 것 보다 사랑을 주는 것이 훨씬 행복 하더라’ 라며 아끼지 말고 가족과 주위사람들에게 주라는 말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김교수의 이 같은 말은 기독교적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더욱 그랬다. 김교수는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경험담을 들려 줬다. 인생가운데서 자신을 사랑한 두 여인이 있다고 했다. 한 여인은 어머니고 또 한 여인은 부인인데 모두가 자신을 끔찍이 사랑 했다고 한다. 해서 사랑받는 김교수는 자신이 가장 행복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보다 7년 먼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난 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 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터득 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받기만 했던 사랑을 변변히 되돌려 준적 없는 자신이, 두 여인이 가고 난 뒤 회한이 남고 얼마나 불행하게 여겨졌는지 몰라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댓가도 기대도 바라지 않는 주는 사랑이야 말로 부부를 변화 시키고 가정을 화목하게 하며 나아가 사회와 세상을 변화 시 킬 수 있는 것이라 본다고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 ‘사랑 하는 순간 맛보게 되는 기쁨은 사랑을 받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다. 사랑의 댓가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 이상을 바라니까 사랑하고도 불행해 지는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원론적인 내용이지만 노철학자의 말에 큰 울림이 있었던 것은 사랑이 식은 요즘 세상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수학 공식처럼 잘 알고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는데 인색해 불연 듯 ‘내가 언제 사랑을 주어봤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사실 관심 받고 사랑받아 행복한 적은 있지만 내가 사랑을 주어 남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니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 였다는 게 맞는 표현 인지도 모른다. 부부 가족간 작은 사랑에서부터 소외받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랑에 이르기 까지 그랬다. 그런데도 친한 주위사람들에게 베푸는 척, 사랑을 주는 척 가면을 쓴 일은 부지기수다. 나에게 돌아오는 대가와 체면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사랑에 계산이 끼어들면 불행의 싹이 피어난다’는 외국 속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조건있는 사랑은 파탄이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시작은 내가 너에게 이만큼 해 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이만큼 해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다. 사랑이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내가 준 사랑의 댓가를 상대방으로부터 기대해선 안된다. 내가 준 사랑만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장사요 거래며 흥정이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교수의 '주는 사랑'도 이같은 사랑을 이야기 한 것일 게다. 하지만 어디 쉬운 일 인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작정하고 마음껏 섬기고 사랑한 후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다는 것이... 실천도 어렵지만 인내하기도 여간 힘들지 않다. 종교적으로, 사랑한 후 아무것도 기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오히려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지만 그것을 경험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부부는 물론 부모 자녀 간에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자녀들의 존재 자체가 부모에게는 축복이요 선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로부터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부모 자녀간의 불행은 바로 이런 과잉된 기대에서부터 출발을 한다. 따라서 그들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 안 있으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또 부모가 됐건 며느리가 됐건 누군가가 모이는 가족을 위해 마음의 준비, 물질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 같은 준비를 ‘주는 사랑’으로 하라고 하다면 너무 이상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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