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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나이 먹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엊그제 저녁자리에서 친구가 이런 푸념을 했다. 시집은 갔으나 함께 사는 딸이 11년간 말티즈라는 애완견을 키우는데 걸핏하면 동물병원을 모시고(?) 가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보통 아니라고. 지난달에도 뒷다리 탈골로 2번이나 응급실에 가느라 법석을 떨었다고 했다. 애완견도 생명체이니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치료비가 만만치 않은 것을 안 이후론 더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완견 나이 11살이면 사람나이로 60이 훨씬 넘은 셈이라 잔병치레가 많은 것은 알고 있으나 상한 이빨 치료해 주고 흐려진 눈동자 교정에 탈색된 털 염색까지, 정성으로 따지면 부모에게 하는 것보다 서너 배는 더 신경 쓰는 것 같다고도 했다.

친구는 그래서 자신도 늙어 가는데, 딸 덕분에 졸지에 늙은 애완견 모시고 사는 게 씁쓸해 어느 날 다리에 붕대 감은 애완견을 안고 나가는 사위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애완견 병구완에 지극정성인 걸 보니 나는 늙고 병들어도 걱정 없을 것 같아 기분이 좋네.”

하지만 이내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내심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며 너스레를 떨 줄 알았는데 웃기만 할뿐 아무소리 안 하더라는 것이다. 속으로 섭섭한 맘이 생기며 붕대를 감고 깨갱거리는 강아지보다 사위가 더 미웠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이 먹는다는 것은 이처럼 작은 것에도 시샘이 생기나 보다 생각하면서 이런 말을 해줬다.

“참 서글픈 일이지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걸…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꿈 깨.”

관심 많이 가고 돈 많이 드는 건 노인이나 아기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그러나 아기는 좀 낫다. 미래가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다. 이것도 아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은 귀찮기만 하다며 다들 떠맡기 싫어 고개를 젓는다. 거기에 돈까지 들어가니 피하기 일쑤다. 젊은이들 사이엔 밥만 축내는 존재란 참담한 말까지 유행한다고 한다. 책임 있는 일을 맡기에 능력이 부족한데도 해 주는 것 없이 대접만 받으려 드는 데 대한 반감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공경은 고사하고 밥값 못하는 밥벌레 취급은 너무한 발상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굴곡을 지나오면서 아직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지혜와 경험이 있는데도 말이다. 미래는 항상 젊은이들의 문화적 전유물이라 떠드는 게 요즘세상이지만 이건 아니다.

장자(莊子)가 이르기를 ‘먹는 나이 거절할 수 없고, 흐르는 시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이들에게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이 드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늙는 것은 자연스런 인생의 모습이라는 진리에도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멋지게 나이 드는 기술과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삶은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어서 더욱 그렇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노화를 즐기면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삶을 찾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또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방식이 만만치 않아서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나이를 먹었고, 몸이 쇠퇴하여 젊은이들과 팔팔한 근력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사회적으로 물러나 휴식만 취하는 것이 마치 인생의 코스인양 생각하면 안 된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희망의 젊은 시절이 있었듯 처음부터 노인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나이 들어가면서도 세상의 모든 나이든 존재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을 베푸는 것도 나이 드는 지혜를 터득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늙는 법을 아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프랑스 지성 앙드레 모루아는 나이 먹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며 멋지게 나이 드는 기술은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고급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의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살아남는 기술, 나아가 경쟁 상대가 아니라 상담 상대라고 여기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다.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준비하는 삶을 산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지금부터라도 나이 먹는 기술을 터득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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