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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인간과 인공지능의 조화

 

고등학교 1학년때 우리 반에 공부도 잘 해 ‘천재’란 생각이 드는 친구가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장판지만한 성적전표를 들고 오셨다. 당시 시험과목은 어찌나 많았는지 20여 개 쯤이나 됐다. 나중에 나도 선생을 할 때 안 일이지만 이 ‘장판지’의 가로 세로를 맞추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담임선생은 그 친구에게 국어~체육까지 20여 개의 개인별 점수를 마구 불러댔다.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며 뭔가를 계산하던 친구는 총점과 소수 첫 째 자리까지의 평균 점수를 바로 대답했다. 60명의 개인 별 총점과 평균은 물론 과목 별 학급총점과 평균점수도 즉시 나왔다. 1시간도 채 안 걸렸다.

그때 나는 그 친구가 천재인 줄 알았다. 주판을 머릿속에 그리며 속셈을 한 것이다. 당시는 학원도 변변하게 없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산학원을 다녔단다. 거기서 암산과 속셈을 익혔다. 바둑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어 아마 6단이다. 수원 출신 여류 프로기사 조혜연 9단, 이정우 9단 등의 프로바둑기사를 어렸을 적부터 지도하며 길러냈다. 그 친구는 역시 서울대에 합격했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지금도 틈틈이 바둑과 수학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나도 주산학원을 다녔다면 수학적인 능력이나 사고력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이처럼 주산은 1985년까지는 초등수학의 기초인 계산 능력에 좋은 영향을 주어 지금의 수학학원만큼이나 인기를 얻었다. 국가검정 대행의 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주산검정 5급 이상 이면 공무원의 평점에 반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자계산기의 보급이 대중화되면서부터 주산은 침체기에 들어섰다. 컴퓨터의 발달과 사회가 디지털시대로 급속하게 변화하면서 주산은 아예 사라졌다. 그렇게 운명을 다한 것처럼 보였던 주산이 최근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게임 중독에 대한 반사 이익이라고나 할까. 집중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주산 열풍이 전국에 불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해 3월28일 방송된 모 방송국의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열한 살의 암산왕 양건의 등장이 이를 부추겼다. 양건은 전자계산기와의 싸움에서 이겼고, 나의 친구처럼 0.9초 만에 지나가는 숫자 15개를 순식간에 암산하는가 하면 받아 적기도 어려운 숫자들을 듣는 순간 계산에 성공했다. 주의력과 집중력에 도움이 되기에 요즘들어 다시 주목받는 주산을 보면서 디지털시대에 나타난 ‘아날로그의 반란’이라 할 수도 있다.

최근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세돌 9단이 세 번을 연달아 패한 뒤 사람들은 실망했다.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 기술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러나 네 번째 대국에서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값진 승리를 거두었다. 1천200여 대의 수퍼컴퓨터를 인간이 이겨내 인류 멸망을 지연시켰다며 사람들은 기뻐했다. 15일의 마지막 대국에서도 결국 져 1승4패를 기록했지만 이번 대국을 계기로 바둑에 대한 열풍이 불고,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기계와 인간의 싸움에서 인간이 비록 졌다고 하더라도 크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결국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계산하기 어려운 슈퍼 컴퓨터가 존재하지만 아직도 속셈이나 주산 그리고 바둑이 남아있는 이유는 자기계발을 통한 더 발전적인 인간이 되길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면 인류의 삶이 윤택해질 수는 있다. 그러나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나왔을 때는 인류가 예상할 수 없는 파멸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인공지능과 인류가 서로 다른 목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인공지능을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일부가 독점하는 행태가 된다면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 기술의 조화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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