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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김영란법’은 살아남을까?

 

‘김영란법’은 살아남을 것인가? 아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정확히 표현해서, 명목이야 유지되겠지만 ‘지금 그대로’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정식 명칭인데, 헌법재판소는 지난 7월 28일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9월 28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아직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법률 자체의 개정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일단 시행령에서 식사접대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비 10만원의 상한기준을 더 높이자는 주장도 있다. 특히 농수축산물의 경우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 시행되면 엄청난 경제적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도 난무하고 있다.

목적이 정당해도 문제가 있다면 불완전한 법

이 법은 2010년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과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을 계기로 제안되었다. 이들 사건에서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자 대가성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금품을 받으면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다. 2011년 6월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했다고 해서 김영란법으로 불린다. 2012년 8월 권익위는 판검사 등의 공직자가 100만 원 넘게 받으면 처벌받는 내용의 원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후 법무부 등 부처 간의 이견으로 진통을 겪다가 2013년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도 ‘법의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고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표류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문제가 대두되고, 부정부패 척결 여론이 높아지자 다시 추진되었다. 2015년 1월 국회 정무위가 나섰으나 언론사와 사립학교를 포함하면서 ‘공무원 등 공공기관 종사자’가 아닌 대상이 무리하게 포함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법의 한 축이었던 이해충돌 방지 부분은 빠졌고, 국회의원의 청탁은 허용하는 것으로 수정된 채 2015년 3월 3일 드디어 국회를 통과했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가야 생명력 유지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이유는 많은 문제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쟁점들을 모두 합헌이라고 했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언론인과 사립학교 관계자를 공직자로 본 것, 기준금액을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 직무관련성이 없어도 100만 원 이상이면 처벌하거나, 1년간 300만원을 초과해서 받으면 처벌하는 것, 또 배우자의 직무관련 금품수수를 안 경우 신고의무를 부과한 것 등은 법체계상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물론 일부 충격이 있겠지만,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약간의 혼란을 감수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부정부패를 없앤다는 정당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적용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예상되며, 혼란스러운 기준 때문에 억울한 희생자를 다수 만들고서야 수정될 것이 뻔하다. 예컨대 대학에서 학위논문 심사 때 외부위원들에게 피심사자가 식사와 교통비 등을 제공하는 것이 오랜 관행인데,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으므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공식 심사료는 보통 6만 원 정도인데, 이것만으로 지방에서 서울의 교수에게 심사를 의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야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해도, 이 법의 적용대상이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위법행위를 어찌 다 적발해 낼까? ‘1년 누계 300만원’을 적용하려면 400만 명을 1년간 다 감시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경찰 10만 명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자칫 ‘재수 없는’ 사람만 처벌되는 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을 법이 사문화(死文化)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된다면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기존의 형법에 따르더라도 부정청탁은 금지되고 뇌물수수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직무관련성이 있어야 처벌하지만 이를 포괄적으로 넓게 보려는 것이 판례의 추세였다. 문제의 핵심은 법대로 처리되지 않고 집행자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서 뇌물을 부르는 사회적 분위기의 쇄신이다. 같은 법조계 식구라고 감싸기만 하는 관행을 무산시킬 제도적 견제장치의 부재이다. 많은 허점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만 강화하면 부패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 너무나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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