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류시화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지
세월 속에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보고 난 뒤
내 이마의 주름살들을 보고 난 뒤
난 그에게 대답했지
내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사실 난 아무것도 세지 않으니까
게다가 내가 살아 온 세월에 대해서는
그가 나에게 말했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설명해 주세요
그래서 난 말했지
어느 날 불시에게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에게
입을 맞추었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입맞춤을
나의 날들이 너무도 많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만을 세지
왜냐하면 그 순간이 정말로 나의 모든 삶이었으니까
모르는 누군가 불쑥 내 나이를 묻곤 한다. 당황스러운 나이에 접어든 나는, 선뜻 제 나이를 대답하지 못하고 출생연도로 말 한다던가 띠로 얼버무리며 난처한 순간을 마무리 할 때가 많다.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한 시간의 나이, 굳이 나이를 세지 않아도 가슴 뛰던 풍경들은 낯설고 오래전 사랑은 내 안 깊숙이 묻어둔 채 이따금씩 꺼내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손바닥이 간지러운 그런 나이에 와 있다 순리처럼 친절한 피부가 말해주듯이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누군가 또 짓궂게 되묻는다. 나이가 한 시간이요? 시인이 간직한 짜릿한 입맞춤의 시간 그 짧은 순간만을 세고 있다면, 과연 지상의 공기가 떨리는 순간은 몇 장이었을까 잠 못 이룬 달의 숨결을 만지작거리는 날들은 또 한 어디쯤 와 있을까, 우리가 세고 있는 은밀한 떨림은, 생에 모든 삶이었을. /정운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