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3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정수자칼럼]쓰레기통에서 건진 진실

 

황급히 쓰레기통을 뒤져 집어든 신문 한 장의 진실. 플로렌스가 버려진 뉴욕타임스 혹평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대면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그토록 공들여 포장해온 진실을 쓰레기통에서 집어 올리다니, 구겨버린 신문처럼 그녀의 삶도 통째 쓰레기통으로 던져진다. 하지만 ‘벌거벗은 임금님’ 충격은 그녀만의 것일 수 없었다. 그녀의 환상 조작에 손뼉 치며 연극을 벌여온 사람들도 같이 벌거벗겨졌기 때문이다.

1%의 재능과 99%의 자신감으로 카네기홀 공연에 도전한 최악의 음치 소프라노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 그녀의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 ‘플로렌스’의 여운이 의외로 길다. 특히 주인공이 쓰레기통에서 건진 진실의 함축이 쓰고 깊다. 얼핏 보면 그것은 기자와 평론가까지 포섭해 상찬 일변도로 꾸며온 또 다른 ‘공연’의 폭로일 뿐이다. 하지만 거기에 이른 과정이 하나의 거대한 연극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네 현실의 한 은유로 보이기도 한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와 비슷한 사례들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 장면이 되감기로 자꾸 되씹어진다. 우리네 직장과 일상은 물론 심지어는 예술이며 학문에서도 권력에 호가호위하며 만드는 판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새삼 일깨우기 때문이다. 주례사 비평이라는 우리 식의 ‘예의’가 그간의 지적과 자아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속 순항 중이듯, 보다 센 권력에 사탕발림 손뼉으로 자신의 위상을 높여가는 처세도 여전히 득세 중 아닌가. 그런 판에 멋모르고 비판이나 반박을 도드라지게 했다가는 그 조직에서 영구제명 벼랑으로 내몰리기 십상인 세상이다. 그래서 가볍게 그린 듯한 영화에서 우리네 현실에 대한 풍자와 조롱을 보게 되고, 그 뒤끝이 오래 남아 씁쓸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얼마나 많은 진실이 쓰레기통에 버려졌을까. 나아가 집어들 수조차 없는 불쏘시개로 사라지고 말았을까. 플로렌스를 보며 숱하게 버려졌을 진실의 후문을 되작이다 문득 문학 판에서 있었던 쓰레기통 당선 일화를 떠올린다. 예심 낙선작에서 당선작으로 올라서는 경우가 간혹 있었으니 일명 ‘쓰레기통 시인’으로 불린 송수권이 그 예다. 응모 당시 원고지가 없어 갱지에 써서 투고한 탓에 시인 지망생이 원고지 쓸 줄도 모른다고 판단한 편집위원이 휴지통에 처박은 것을 이어령 교수가 발견해 당선됐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휴지통 속에서 꺼낸 시는 ‘산문에 기대어’로 지금도 송수권 시인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명편이다. 이는 진실 찾기 게임처럼 재미를 더하는 후문이지만 플로렌스의 경우는 다르다.

그렇다고 플로렌스도 매도를 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다. 비록 쓰레기통에서 진실을 건지긴 했지만 오직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해서 ‘베르디클럽’ 같은 음악애호가 모임도 만들어 지속적인 후원을 했다니 말이다. 게다가 최악의 소프라노임을 확인시킨 꼴이 된 그녀의 카네기홀 공연이 그곳 공연 레코드 중 가장 많은 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조수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음치의 고음 불가를 사람들은 왜 찾을까. 아이러니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심리에서 나오는 듯싶은데 인물에 공감하는 관객이 많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최고 배우들이 실존 인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 연기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범재임을 알듯, 큰 재능 없이 열정만으로 고군분투한 그녀의 삶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는 것 아닐까.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 한다고는 해도 노래를 안 한다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플로렌스의 말이 길게 맴돈다. 거기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공자의 말도 겹친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녀의 음악 사랑이 진실이었다는 데서 찾는다. 최악의 음치 소프라노라는 진실보다 최선의 노력이라는 진심의 진실이 더 감동인 게다. 그렇다면 진실은 진심에서 나오는데 왜 간혹 쓰레기통에서 발견되는지, 그 행방이 참으로 오묘하다.

 









COVER STORY